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꿈팜농장에서 열린 지혜공유협동조합의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소시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회적 경제] 지역 학습공동체
“마트에서 사 먹던 소시지와 빵을 농장에서 직접 만들어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 꿈팜농장에서는 강민기(8)군 등 어린이와 청소년, 부모 등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 열렸다. 20여명의 가족 단위 참가자들은 임윤경 농장 대표의 설명에 따라 정성껏 소시지와 단팥빵, 토끼 모양의 쿠키를 만들며 즐거운 한나절을 보냈다.
이날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은 경기도 고양·파주 지역에서 지난해 8월 출범한 지혜공유협동조합의 ‘오만가지 시민강좌’ 중 하나로 진행됐다. 오만가지 시민강좌는 고양·파주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선생님 또는 학생이 되어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학습공동체다. 지혜공유협동조합은 국내 최초로 학습을 매개로 한 지역공동체 협동조합으로, ‘앎의 공유, 삶의 교류’란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한 뒤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시민강좌를 열어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과)의 ‘인문학 향기’ 강좌를 시작으로 음악과 명상, 커피 만들기, 자동차 정비법, 스마트폰 활용하기 등 두달 동안 20여개의 강좌가 열려 연인원 200명이 지혜를 공유했다.
시민 누구나 강좌를 제안할 수 있으며 5명 이상의 신청자만 있으면 개설된다. ‘행복한 커피스트’와 ‘전래놀이-혼자 하는 실뜨기’, ‘콩글리시 바로잡는 영어’, ‘인문학으로 보는 사주명리학’ 등의 강좌가 강사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지난 8일 조합에 새로 가입한 권선희(50·논술강사)씨는 “탁구에 관심 있는 초보자들을 모아 탁구 기초 강좌를 열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수강료는 회당 5000~1만원으로 이 가운데 70%는 강사료로, 나머지는 운영비로 쓰인다. 소규모 강좌라 따로 강의실이 필요 없다.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두레치과의원의 아트홀이나 고양시 행신동 카페 ‘오늘은 쉬어야지’ 등 조합원들이 제공하는 공간이 강의실로 사용된다. 강사들도 강의료에 연연하지 않고 지역의 의미있는 일에 재능을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조합 쪽의 설명이다.
장성은(41) 지혜공유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이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는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차려놓은 밥상을 먹어야 하는 손님 취급을 받는 다른 강좌와 달리 지혜공유협동조합의 강좌는 조합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운영 방식을 결정하고 강좌를 직접 만들어가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강좌라도 5명 이상의 요청이 있으면 ‘앙코르’ 강좌가 열린다. 지금까지 7개 강좌가 앙코르를 받았다. 조합은 5~10차례 정도 앙코르가 이어지면 해당 강좌 강사를 지역의 마이스터(생활 장인)로 지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고양서 20여 차례 시민강좌
누구나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어
조합원 1000명 확보 목표
‘영화나눔’ 협동조합 등과 연대
지역화폐 발행해 협력 모색 대표적인 앙코르 강좌로는 ‘스마트폰 100% 활용하기’가 꼽힌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40~60대의 중·장년층이 주로 참여해 두차례나 강의 신청이 마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계속되는 앙코르 요청에 14일 조합의 아지트인 ‘오늘은 쉬어야지’ 카페에서 세번째 앙코르 강좌가 열렸다. 백석동 주민 방아무개(61)씨는 “예전에는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밖에 몰랐지만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배우고 나서 새롭게 열린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직접 촬영한 동영상에 친구의 이름을 새겨 넣은 특별한 연하장을 보내 친구들로부터 인기와 부러움을 독차지했다”고 말했다. 강사로 나선 이재정(42)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스마트폰 제조·판매사는 파는 데만 신경쓰지 이용자들이 어떻게 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인터넷 카페에 음악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고 싶으나 조작법조차 모르던 나이 드신 분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수렴해 강좌를 제안하거나 강사를 섭외하는 일은 조합 운영위원 10명이 맡는다. 운영위원은 환경운동가, 출판사 대표, 논술강사, 동물보호가, 카페 사장, 도서관 사서, 번역가 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꾸려져 있다.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티브이(TV) 창립자인 문용식(55) 조합 이사는 지난 8일 운영위원 회의에서 “회의 때마다 많은 유익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홍보 부족으로 미뤄지거나 폐강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안정적인 조합 운영을 위해 조합원 수를 최소 500명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책 출판사 ‘장수하늘소’ 대표인 길도형(49) 운영위원은 “지식공유 활동의 결과물을 취합해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중장기적 과제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토박이가 들려주는 고양의 역사’ ‘머플러를 매는 50가지 방법’ ‘악보 보는 법’ ‘수납 잘하는 법’ 등의 갖가지 강좌가 제안됐다. 오만가지 시민강좌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면서 출범 당시 20명이던 조합원이 4개월 만에 80명으로 늘었다. 조합은 조합원 참여만으로도 강좌를 원활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조합원 수를 이른 시일 안에 500~1000명으로 늘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조합에 가입하려면 최소 2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야 한다.
조합은 시민강좌가 뿌리를 내리면 13회로 계획했다가 3회 만에 중단된 ‘생태주의 인문학 아카데미’ 등 특별한 주제나 이슈에 관한 전문강좌를 다시 개설할 방침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다 형식의 소통을 통해 지혜를 나누는 프로그램인 ‘만담카페’는 현재 개설 준비중이다. 만담카페는 사춘기 아이를 두고 쩔쩔매는 아빠들의 모임, 영화 관람 뒤 토론 모임 등 강사 없이 대화 모임으로 진행된다. 또 지역순환경제를 위한 ‘지역화폐’를 만들어 강사료의 10%를 지역화폐로 지급할 예정이다. 지역화폐로는 생협에서 물건을 구입하거나 강좌 수강료 등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불교 환경단체인 에코붓다에서 이사를 지낸 유정길(54) 조합 이사장은 “지역의 캠퍼스화로 오만가지 강좌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려 고양·파주 지역을 살 만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조합의 최종 목표다. 이웃과 담을 쌓고 사는 대도시의 떠돌이 문화가 아닌 학습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붙박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강좌에서 역사기행 등 가치를 지향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가지를 뻗게 되면 지역사회의 정치와 문화가 건강해지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년퇴임한 사람들이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영국의 ‘U3A’(University of the Third Age)와, 마을 전체가 캠퍼스가 되어 온갖 강의가 진행되는 일본의 시부야대학 등이 지혜공유협동조합의 본보기가 되었다.
지난해 2월 지혜공유협동조합을 처음 제안한 김달수(46) 경기도의원(민주당)은 “사단법인과 협동조합을 놓고 저울질하다가 공공성격의 사업을 하면서 영리를 함께 추구하기 위해 사업체와 시민단체적 성격을 동시에 가진 협동조합을 선택했다. 등록만 하면 쉽게 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데다 조합원 교육과 지역사회 공헌사업이 필수적이어서 지역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좋은 구조라 판단했다”고 협동조합 설립 배경을 밝혔다.
지혜공유협동조합은 지방정부 등 일체의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된다. 유 이사장은 “외부 지원에 길들여지면 지원기관과의 관계에서 당당해지기 어렵고 자립할 수 없다. 초기에는 힘들겠지만 돈이 없어야 살려고 버티는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고양·파주 지역에는 지혜공유협동조합 말고도 수도권 지역에서 처음으로 일산 라페스타에 ‘바보주막’을 차려 운영 중인 ‘마중물고파협동조합’과 ‘영화나눔협동조합’(cinecoop) 등 이색 협동조합이 지난해 잇따라 창설돼 의욕적으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영화나눔협동조합은 전국 최초로 영화 소비자들이 영화 배급과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만든 협동조합으로,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아닌, 작가정신에 충실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등 ‘문화로서의 영화’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들 세 협동조합은 지난해 9월 일산동구청에서 합동설명회를 연 데 이어, 지역화폐 발행 등 본격적인 연대와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김달수 의원은 “지역화폐를 이용해 지혜공유협동조합에서 강의를, 마중물고파협동조합에서 음식을, 영화나눔협동조합에서는 영화를 관람하고, 생협이나 상점에서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역통화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지난해 11월부터 열린 지혜공유협동조합의 ‘오만가지 시민강좌’ 프로그램 중 하나인 엘피(LP)로 듣는 음악 이야기.
지난해 11월부터 열린 지혜공유협동조합의 ‘오만가지 시민강좌’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마트폰 100% 활용하기.
누구나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어
조합원 1000명 확보 목표
‘영화나눔’ 협동조합 등과 연대
지역화폐 발행해 협력 모색 대표적인 앙코르 강좌로는 ‘스마트폰 100% 활용하기’가 꼽힌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40~60대의 중·장년층이 주로 참여해 두차례나 강의 신청이 마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계속되는 앙코르 요청에 14일 조합의 아지트인 ‘오늘은 쉬어야지’ 카페에서 세번째 앙코르 강좌가 열렸다. 백석동 주민 방아무개(61)씨는 “예전에는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 것밖에 몰랐지만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배우고 나서 새롭게 열린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직접 촬영한 동영상에 친구의 이름을 새겨 넣은 특별한 연하장을 보내 친구들로부터 인기와 부러움을 독차지했다”고 말했다. 강사로 나선 이재정(42)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사무국장은 “스마트폰 제조·판매사는 파는 데만 신경쓰지 이용자들이 어떻게 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인터넷 카페에 음악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고 싶으나 조작법조차 모르던 나이 드신 분들이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변 사람들의 요구를 수렴해 강좌를 제안하거나 강사를 섭외하는 일은 조합 운영위원 10명이 맡는다. 운영위원은 환경운동가, 출판사 대표, 논술강사, 동물보호가, 카페 사장, 도서관 사서, 번역가 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꾸려져 있다.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티브이(TV) 창립자인 문용식(55) 조합 이사는 지난 8일 운영위원 회의에서 “회의 때마다 많은 유익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홍보 부족으로 미뤄지거나 폐강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안정적인 조합 운영을 위해 조합원 수를 최소 500명은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책 출판사 ‘장수하늘소’ 대표인 길도형(49) 운영위원은 “지식공유 활동의 결과물을 취합해 어떤 방식으로 지식을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중장기적 과제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토박이가 들려주는 고양의 역사’ ‘머플러를 매는 50가지 방법’ ‘악보 보는 법’ ‘수납 잘하는 법’ 등의 갖가지 강좌가 제안됐다. 오만가지 시민강좌가 시민들의 관심을 끌면서 출범 당시 20명이던 조합원이 4개월 만에 80명으로 늘었다. 조합은 조합원 참여만으로도 강좌를 원활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조합원 수를 이른 시일 안에 500~1000명으로 늘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조합에 가입하려면 최소 2만원 이상의 출자금을 내야 한다.
지혜공유협동조합 운영위원들이 지난 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두레치과의원 아트홀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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