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30일 저녁 6시께 대구 수성구와 북구지역 대형마트 3곳에 짧은 스포츠형 머리모양을 한 건장한 체구의 젊은 남성들이 들이 닥쳤다. 이들은 종업원과 다른 손님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열대에 있던 야구 방망이 30개 등 흉기로 사용될 수 있는 물건들을 마구 쓸어 담아 구매했다.
그리고나서 이들이 도착한 곳은 대구 수성구 대흥동 대구스타디움이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인원과 장비를 확인한 뒤 승용차와 승합차 6대에 나눠타고 수성나들목을 통해 대구를 빠져나갔다. 대구와 포항을 잇는 익산포항고속도로를 71㎞ 가량 달려 경북 포항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경북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 청통휴게소에서는 다시 인원과 장비를 확인했다.
포항에 도착한 이들은 죽도시장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북쪽으로 20㎞를 달려 밤 11시께 포항시 북구 청하면 월포해수욕장에 도착했다. 5시간 동안 좁은 차 안에 있다가 흉기를 들고 우르르 내린 남성들은 모두 49명이나 됐다.
이들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구의 최대 폭력조직 ‘동성로파’ 조직원들이었다. 포항의 폭력조직 ‘삼거리파’와 ‘전쟁’을 벌이기위해 100㎞를 달려온 것이다.
이들 두 폭력조직은 월포해수욕장의 상인연합회인 월포번영회에서 따낼 수 있는 수상레저 사업권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다. 매년 7~8월 개장하는 월포해수욕장은 조용하고 물이 깨끗해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는 곳이다. 백사장 면적만 10만㎡가 넘어 하루 5만명이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여름철 한 차례 수상레저 사업을 벌이면 많게는 8000만원에 이르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원래 월포해수욕장 수상레저 사업은 포항 삼거리파 행동대원 강아무개(34)씨가 매년 운영해왔지만, 지난해 6월 대구 동성로파 부두목 박아무개(45)씨가 삼거리파를 제치고 수상레저 사업권을 따내며 두 폭력조직 간 마찰이 시작됐다. 동성로파는 삼거리파에서 항의가 들어오자, 먼저 선제 공격을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날 월포해수욕장에서는 두 폭력조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삼거리파 조직원들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성로파는 전체 조직원이 100여명이지만, 삼거리파 조직원은 30여명에 불과하다. 결국 동성로파 조직원들은 새벽 1시까지 삼거리파 조직원들을 기다리다가 대구로 철수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전쟁을 치르기위해 포항에 갔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줄줄이 붙잡혔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조직원들을 동원해 패싸움을 하려 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로 동성로파 부두목 박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행동대원 안아무개(35)씨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달아난 행동대원 라아무개(39)씨 등 11명은 지명수배를 내렸다. 과거 대구에서 폭력조직이 움직였던 단일 사건들 가운데는 최대 규모다.
경찰은 이들이 흉기를 마련한 대형마트와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 등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분석해 신원을 파악하고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이종섭 대구지방경찰청 폭력계장은 “1980년대에도 많아야 한쪽 폭력 조직에서 20여명 가량이 움직이는 정도였고, 최근 들어서는 3~4명 정도의 간헐적인 충돌만 있었다. 폭력조직이 개입할 수 있는 이권이 점점 줄어드는 데다가 불황 등이 겹치며 이권 다툼이 심해지다보니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구에는 과거 양대 폭력 조직으로 동성로파와 향촌동파가 있었다. 하지만 향촌동파가 신파와 구파로 쪼개지면서, 지금은 동성로파가 최대 폭력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 동구연합과 같은 작은 규모의 폭력 조직도 활동하고 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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