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새벽부터 또다시 눈이 내린 강원도 강릉시내 도로에서 사람들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인도 대신 차도로 걸어 출근하고 있다. 강릉/박수혁 기자 psh@hani.co.kr
‘8일째 폭설’ 강릉 가보니
차 다니기 힘들어 출퇴근 생고생
한명 겨우 다닐 ‘토끼길’로 이동
미끄럽고 사고위험에 집밖 못나가
공무원도 쪽잠 자며 눈치우기 씨름
차 다니기 힘들어 출퇴근 생고생
한명 겨우 다닐 ‘토끼길’로 이동
미끄럽고 사고위험에 집밖 못나가
공무원도 쪽잠 자며 눈치우기 씨름
“폭설, 폭설, 또 폭설…. 이젠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나요.”
13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김경민(39)씨는 ‘폭설’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부터 쳤다. 1주일 넘게 이어진 폭설 때문에 일상이 엉망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눈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학교는 닫아 종일 두 아들과 집 안에서 씨름하고 있다. 스트레스 받아서 소화도 잘 안된다. 우울증까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8일째 ‘눈과의 전쟁’을 치르는 강릉 시민들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저녁 7시 현재 북강릉에 쌓인 눈은 101.0㎝에 이른다. 고성(75.0㎝)과 동해(70.0㎝), 속초(54.0㎝)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상청은 14일 밤까지 5~10㎝ 눈이 더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12일 잦아들었던 눈이 13일 새벽부터 또다시 쏟아지자, 강릉시 교동 출근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사라진 거리에 차량들과 보행자들이 뒤엉켰다. 눈에 파묻힌 버스정류장에서 좀처럼 올 기미가 없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김아무개(72)씨는 “손주 졸업식에 가야 해서 일찍 나왔는데 30분째 버스가 오지 않는다”고 난감해했다.
대중교통이 사실상 끊어지면서 시민들은 눈더미 사이로 한 명이 겨우 다닐 만한 이른바 ‘토끼길’로 걸어서 이동하곤 했다. 이마저도 쌓인 눈이 밤새 얼어 빙판과 다르지 않았다. 전희진 강릉시 주무관은 “시청까지 걸어서 출근한다. 50분쯤 걸리는데 인도의 토끼길이 미끄러워 차도로 내려가 걷는다”고 말했다.
건물 간판이나 지붕에서 떨어진 눈덩이가 아찔하게 하기도 했다. 강릉시 노암동 아파트 옥상에서 눈덩이가 떨어져 주차된 차량 10여대가 파손됐다. 엄영숙(46)씨는 “지붕이나 건물 간판에서 떨어진 눈덩이에 아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폭설과의 싸움을 치러온 제설 공무원들도 피로감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남동현 강릉시청 장비반장은 “지난 6일부터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쪽잠으로 버티고 있다. 2011년 폭설 때도 밤낮으로 제설 작업을 하느라 큰아이 졸업식에 못 갔는데 올해도 둘째 딸 졸업 날을 제설차 안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하기론 이날까지 비닐집과 축사, 주택 등 210여곳이 폭설에 부서지거나 일부가 무너졌다. 피해는 35억4100만원가량이다. 강릉시 강동면 양계업자 김홍순(56)씨는 “눈 때문에 축사 8동이 다 무너졌다. 병아리를 들여올 때라 돈도 다 주고 계약했는데 축사가 없어 못 받고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포항·경주 등 경북지역에도 일주일째 많은 눈이 내렸다. 13일까지 집계된 경북지역 피해는 24억원이다. 비닐집 182채, 축사 11동, 버섯재배사 10동, 농업시설 230동이 부서졌다.
강릉/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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