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의 정현복 이장이 3일, 지난달 24일 민간 건설업자가 토지를 강제수용한 뒤 세운 철문을 주민들이 몰려가 무너뜨린 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땅바닥에 무너진 철문에는 주민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다.
현장 l 연천군 학곡·구미리
‘미군공여구역특별법’ 적용해
골프장 부지 절반 강제로 수용
사업자가 출입 막아 농민들 반발
보상금도 시세보다 2~3배 적어
대책위 “원천 무효” 법적대응키로
‘미군공여구역특별법’ 적용해
골프장 부지 절반 강제로 수용
사업자가 출입 막아 농민들 반발
보상금도 시세보다 2~3배 적어
대책위 “원천 무효” 법적대응키로
민간 건설사가 골프장을 건설하면서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수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골프장 건설이 ‘공익사업’이라고 한 비상식적인 법규정 때문이라 농민들의 억울함은 더욱 큰 상황이다.
3일 임진강 이북 전방지역인 경기 연천군 백학면 학곡리, 구미리 일대 골짜기 입구 세 곳에는 철문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난 1월 농지와 선산을 강제수용당한 뒤, 민간 건설업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입구에 철문까지 세우고 출입을 막자 마을 주민들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주민 50여명은 지난달 24일 밧줄을 걸어 철문을 무너뜨렸다.
앞서 백학관광개발원(유승개발컨소시엄)은 지난 1월 이 일대 토지 수용을 시작했다. 백학관광개발원은 1350억원을 들여 2015년까지 이 일대에 141만6435㎡ 크기의 27홀짜리 골프장 등을 지을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골프장 부지의 절반 정도를 소유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버텼음에도 강제수용을 피할 수 없었다. 골프장 부지가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의 적용을 받은 탓에, 땅주인이 반대를 해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강제수용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군공여구역특별법이 ‘미군부대 주변지역을 개발해 그 이익을 주민에게 돌려준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지역주민들한테 피해만 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인근 파주지역에서도 롯데쇼핑이 미군부대 주변에 대형쇼핑몰 ‘세븐페스타’를 조성하기로 해 주민이 반발하고 있다.(<한겨레> 2월17일치 16면) 파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어 “개발에 눈먼 지자체가 주민 땅을 빼앗아 대기업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곡리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와 선산을 골프장 짓는 데 내줄 순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동 정씨 집성촌인 이 마을 토박이 정채순(71)씨는 “골프장 주변 농산물은 농약 오염 때문에 거들떠도 안 본다는데 어디 가서 살지 막막하다”고 했다. 골프장 예정지는 하동 정씨, 원주 원씨 등 종중 묘역 500여기가 조성돼 있다. 보상금액이 적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골프장대책위원장인 정현복(54) 학곡리 이장은 “임야 보상값이 3.3㎡당 3만~5만원으로 주변 시세보다 2~3배나 적다. 이 돈으로 다른 땅을 사는 건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토지수용 원천무효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대해 백학관광개발원 쪽은 “임야 90%에 대한 소유권 이전이 완료돼 산불 방지 등을 위해 출입문을 세웠다. 출입을 통제하진 않았다. 인허가 이후 사업 윤곽이 잡히면 주민과 상생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연천군은 골프장이 들어서면 200명의 고용창출과 연 30억원의 지방세 세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했다.
골프장 건설을 위한 토지수용은 헌법 23조 3항의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 수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식적으로 골프장을 짓는 것은 사업자나 이용자의 사익을 위한 것이지 ‘공공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골프장 사업자는 수용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아 땅을 매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별법은 주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토지 수용과 함께 혜택은 모두 사업자 몫으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연천/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