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평화동 ‘나눔맛집’에선 절반값으로 형편 어려운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원조평화쌈밥 주인 배명희(오른쪽)씨가 지난 5일 이아무개(가운데)씨와 학산종합사회복지관 황은주(왼쪽) 사회복지사에게 음식을 내놓고 있다.
[지역 쏙] 전주 학산종합복지관 ‘밥상 나눔’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취약한 사회안전망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 복지 사각지대의 밥 굶기 일쑤인 이웃들과 한끼를 반값으로 나누는 식당들이 있다. 전북 전주의 ‘나눔맛집’들이다. 이들의 반값 실험이 지속될 것인가?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취약한 사회안전망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 복지 사각지대의 밥 굶기 일쑤인 이웃들과 한끼를 반값으로 나누는 식당들이 있다. 전북 전주의 ‘나눔맛집’들이다. 이들의 반값 실험이 지속될 것인가?
나눔맛집 쿠폰
값싸게 식사 해결할 방법 고민
동네식당 찾아 ‘반값 밥상’ 설득
10곳 참여 ‘나눔쿠폰’ 사업 시작
이웃끼리 돕는 공동체 밑거름 돼
식당 주인도, 이용주민도 만족 복지관은 바로 주민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다. “혼자서 조리하는 것이 어렵다”, “외식하기에는 돈이 너무나 많이 든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아파트단지 주변에서 값싸게 한끼를 해결할 길을 찾아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복지관은 고민에 빠졌다. 많은 인원에게 집단 급식하려면 시설도 있어야 하고 영양사 등 인력을 채용하는 등 예산이 적지 않게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처 동네 식당들에 나눔맛집을 제안했다. 1만원 미만 음식은 반값만 받도록 호소했다. 주변 식당 60여곳에 취지를 알렸다. 10곳이 동참할 뜻을 알려왔다. 분식, 중국요리, 감자탕, 쌈밥 등 식당들도 나서줘 구색이 어엿하게 갖춰졌다. 나눔맛집을 기획한 김도형 사회복지사는 “평화주공 4단지 주민 가운데는 여러 이유로 식사 해결이 어렵거나, 경제적 형편 때문에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가 쉽지 않은 이들이 많다. 나눔맛집의 목적은 주민들이 음식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도와주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반값식당’이 아니라 ‘나눔맛집’이라고 굳이 부르기로 한 것도, 이용자들의 자존감을 상하지 않게 배려하고 참여하는 식당들도 이웃에게 기부한다는 점을 알리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름 말고도 이용자들이 거리낌을 느끼지 않도록 고심했다. 식당에서 음식값의 절반만 내면 남의 눈에 띌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쿠폰을 도입했다. 필요할 때 복지관에 들러 어느 식당을 이용할지 기록대장에다 쓰고 하루에 쿠폰 한장씩을 받아갈 수 있게 했다. 이용자들이 대부분 홀로 지내는 40~50대들인데, 창피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나눔맛집을 이용할 수 있는 주민은 이 단지에 살면서 무료 급식 대상에서 제외된 60살 미만 혼자 사는 가구이고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한정했다. 복지관에 등록하도록 했는데 지금은 남자 17명, 여자 5명 등 22명이다. 식당들은 형편에 따라 한달에 30명까지 지원한다. 식당에는 연말정산 때 기부금 처리를 해준다. 나눔맛집과는 방식에 좀 차이가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어려운 이들을 거드는 반값식당을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난해 4월 전남 순천시에선 한 협동조합이 전국에서 처음 반값식당을 열었다. 자율 급식으로 인건비를 절약해 한끼 밥값을 3500원으로 책정했고, 주변 식당에 피해를 줄이려 하루 200명 분량만 팔았다. 하지만 식당을 찾는 손님이 많지 않아 몇달 전 문을 닫았다. 서울에서도 지난해 저소득층을 위한 2500~3000원 수준의 반값식당을 추진했다가 주변 식당 등의 반발로 진통을 겪었다. 노영웅 학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자발적으로 이웃끼리 서로 도와 공동체를 꾸려가는 게 목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복지생태공동체를 꿈꾸는 복지관은 재활용 장터를 한달에 두번 열고, 문화활동에서 배운 기술로 만든 물품을 팔아 수익금을 나누고, 주민들의 소식을 담은 마을신문도 만들어 소통하고 있다. 나눔맛집에 참여한 식당 주인들도 만족감을 나타냈다. 우리밀칼국수 주인 김경숙(52)씨는 “남한테 베푸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취지가 좋아서 남편이 먼저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남한테 베풀며 서로 돕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최은자 전주시 생활복지과장은 “행정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영역에 민간이 먼저 나서서 이웃을 보살피고 있어 아름답다. 다른 동 지역에도 퍼지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밥 굶는 중년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을 민간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찬영 전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반값식당은 민간에서 벌이는 선행이고 미담이다. 하지만 선행만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각지대를 줄일 제도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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