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대덕구의 대표적인 유흥가로 불법 성매매 카페가 밀집해 성황을 이루던 거리에 지난해 9월7일 ‘중리행복 벼룩시장’이 문을 열었다. 매주 토요일(4~6월, 9~10월) 문을 여는 중리행복 벼룩시장은 지난해 11월9일까지 7차례 동안 5만여명이 찾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대덕구청 제공
[지역 쏙] 시민공간으로 바뀌는 집창촌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대대적인 ‘성매매와의 전쟁’으로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된서리를 맞았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치거나 지자체가 앞장서 성매매 집결지를 주민친화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대대적인 ‘성매매와의 전쟁’으로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된서리를 맞았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치거나 지자체가 앞장서 성매매 집결지를 주민친화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현장을 들여다봤다.
지난 5일 대전시 대덕구 중리동에 ‘행복 벼룩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시민들은 겨우내 집 안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물건들을 저마다 가지고 나와 장터에 내놨다. 이날도 6500여명의 시민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중리행복 벼룩시장은 지난해 9월7일 문을 연 뒤로 지난해 11월9일까지 7차례 열린 벼룩시장에 5만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대박’이 났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공간이 됐다.
하지만 벼룩시장이 열리는 ‘중리행복길’은 2~3년 전만 해도 밤이 되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빛나는 ‘카페촌’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어두컴컴한 길거리엔 이른바 맥주·양주집으로 불리는 불법 성매매업소가 밀집해 성황을 이뤘다. 대전의 대표적인 유흥가였다.
그러던 것이 2012년 5월 대덕구가 원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중리행복길 조성사업’을 진행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왕복 4차로였던 차도를 2차로로 줄였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그만큼 늘어나면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거리’로 변해갔다.
거리 문화도 달라졌다. 색깔과 크기가 제멋대로였던 간판도 작고 예쁘게 바뀌었다. 전봇대는 지중화사업으로 모두 땅속으로 들어갔고 하늘에 거미줄처럼 늘어서 있던 전깃줄도 사라졌다. 음식을 거리에서 즐길 수 있게 ‘해피푸드존’이란 이름의 노천카페도 생겼다. 중리행복길에 있는 164개 식당 가운데 65개 업소가 노천카페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면서 거리에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거리로 입소문이 났다.
주민 임희수(48·여)씨는 “거리가 깨끗해지면서 벼룩시장과 노천카페도 생기는 등 분위기가 확 변했다. 이전까진 불법 카페들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오기 꺼려지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벼룩시장을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70여곳에 이르렀던 불법 카페는 이달 초 대덕구 조사 결과 모두 사라져 호프집이나 식당 등 ‘건전한 업소’로 탈바꿈했다.
대덕구청 정진일 자치행정파트장은 “우리 구는 밝은 거리 분위기를 만들어 불법 성매매업소들이 자연스럽게 건전업소로 전환하도록 유도한 것이 성과를 거뒀다. 다른 지자체로부터 문의도 많이 받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지역주민이 호응한 민관 거버넌스(협치) 방식과 기존 상권을 대체할 노천카페, 벼룩시장 등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마찰과 반발을 줄였다는 것이다.
■ 민관이 힘 합쳐 전북 전주에서도 성매매 집결지인 ‘선미촌’ 폐쇄를 위해 주민과 행정기관이 힘을 모았다. 옛 전주역 주변인 선미촌은 지금도 성매매업소 40여곳이 영업을 하고 있다. 강소연 전주의제21 사무차장은 “선미촌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결혼한 자식들이 ‘성매매업소가 근처에 있어 자녀들의 교육에 좋지 않다’며 부모 집에 방문하지 않는 등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여성단체와 도시계획 전문가, 시의원, 전주시 직원 등 모두 25명이 참여하는 ‘전주 선미촌 정비를 위한 민관협의회’(민관협의회)가 꾸려졌다. 이들은 이곳에 전주시청 2청사를 짓거나 인근 한옥마을과 연계한 한옥 게스트하우스 거리나 협동조합 특화거리 등을 조성하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조선희 민관협의회 대표도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뒤 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결실을 못 봤다. 민관이 힘을 모아 선미촌 정비와 도시재생이라는 두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였던 중앙시장 주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청주시와 주민 등이 대대적 정비에 나섰기 때문이다. 청주시와 중앙동 주민, 상인회, 여성인권상담소, 경찰 등 16개 단체는 지난달 18일 ‘중앙동 성매매 집결지 계도 단속팀’을 꾸려 주변을 돌며 자진 폐쇄 유도 홍보활동을 벌였다. 유성남 청주시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중앙시장 성매매 업소를 정비한 뒤 복합문화공간을 꾸밀 계획이다. 옛 도심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시는 8월까지 계도활동을 한 뒤 올해 안에 이들 업소의 폐쇄를 유도할 참이다. 이와 함께 87억여원을 들여 청주역사 재현과 환경 정비사업을 펴나갈 계획이다. 편재순 중앙동 통장은 “마을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게 돼 기대가 크다. 동네 근처에 성매매업소가 몰려 있어 걱정이었는데 이제 안심”이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에서는 이른바 ‘신포동 꽃동네’로 불리는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기 위해 주민·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 ‘서성동 집결지 재정비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의 요구에 창원시도 이 일대 2만1500㎡를 재정비해 300억원을 들여 ‘3·15의거 기념공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웠다. 신포동 꽃동네는 1900년대 초에 생겨 현재 38개 업소 130여명의 성매매 여성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 성매매 집결지 폐쇄, 행정이 앞장 강원도 춘천시에서는 행정기관이 나서 60여년 동안 이어온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했다. 춘천의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인 춘천역 주변 ‘난초촌’은 지난해 8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1년 주한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가 생기면서 들어선 난초촌은 캠프페이지가 없어지면서 60여년 만에 사라졌다.
대신 이 자리엔 내년 10월께 4283㎡ 규모의 시민공원과 주차장이 들어선다. 지난해 5월 성매매 업주들과 종사자들이 지난해 8월 말까지 영업을 하고 스스로 문을 닫겠다고 약속한 뒤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박성숙 춘천시 여성담당은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단속과 영업 제한, 재개발 등으로 강제 폐쇄된 곳은 있지만 난초촌처럼 성매매 업주 쪽이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난초촌이 폐쇄된 데는 춘천시의 역할이 컸다. 춘천시는 폐쇄 설득과 함께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성매매 피해자 등 자활지원 운영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로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 52명은 1인당 1000만원씩의 특별생계비를 지원받아 성매매 집결지를 떠났다. 춘천시는 난초촌 건물을 모두 매입한 뒤 철거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인 서구 충무·초장동 일대의 이른바 ‘완월동’도 부산시 주도로 문화·예술 동네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부산시는 원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내년부터 문화·예술 시설을 본격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올해는 1억원을 들여 완월동 들머리에 가족을 연상시키는 옹벽 그림부터 그릴 계획이다. 황동철 부산시 창조도시기획과장은 “완월동에는 아직도 50여곳에서 24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이 지역에 문화를 입혀서 이곳을 서서히 바꿔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폐쇄와 그 이후를 고민할 때 박선애 경남여성인권지원센터 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지자체, 경찰, 시민 등이 나서 집창촌을 폐쇄하고 공원 등 시민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집창촌 재정비라는 큰 방향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을 보호할 대책 등이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라태랑 ㈔강원여성인권지원공동체 춘천길잡이의집 소장은 “서울 등 일부 지역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재개발 쪽으로만 방향을 잡고 있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업주들이 이익을 다 가져가 다른 곳에서 또다시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는 ‘풍선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춘천 난초촌이나 대전 중리행복길 사례처럼 행정이 앞장서 별다른 마찰 없이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한 뒤, 전주·창원 성매매 집결지처럼 이곳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춘천 대전/박수혁 송인걸 기자, 전국종합 psh@hani.co.kr
대전시 대덕구의 대표적인 유흥가로 불법 성매매 카페가 밀집해 성황을 이루던 거리에 지난해 9월7일 ‘중리행복 벼룩시장’이 문을 열었다. 매주 토요일(4~6월, 9~10월) 문을 여는 중리행복 벼룩시장은 지난해 11월9일까지 7차례 동안 5만여명이 찾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대덕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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