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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남자 목욕일입니다’

등록 2014-05-11 20:53수정 2014-05-12 17:06

전북 고창군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생활복지 차원에서 면 단위 작은목욕탕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 주민들이 전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작은목욕탕 탈의실에서 목욕을 마친 뒤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전북도 제공
전북 고창군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생활복지 차원에서 면 단위 작은목욕탕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 주민들이 전북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작은목욕탕 탈의실에서 목욕을 마친 뒤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전북도 제공
[지역 쏙] 전북 고창군 대산면 ‘작은 목욕탕’

전북 고창 대산면 ‘작은 목욕탕’ 앞에는 아침 6시부터 문 열기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들은 이 목욕탕이 지난해 5월 문을 열기 전에는 10㎞가량 떨어진 다른 동네로 원정 목욕을 떠나야 했다. 이제는 동네에 있는 작은목욕탕에서 1000원만 내면 목욕하고 사우나도 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전북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 있는 작은목욕탕 입구에는 ‘오늘은 남자 목욕일입니다’ ‘오늘은 여자 목욕일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매일 바뀐다. 운영경비를 아끼려고 1개의 목욕탕을 남성(월·수·금)과 여성(화·목·토)이 격일제로 쓰기 때문이다. 이 목욕탕은 전북도가 생활밀착형 5대 작은 시리즈의 하나로 시작한 ‘작은목욕탕’ 1호이다.

지난달 18일 오전 목욕탕 탈의실에 들어서자 어르신 4명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황두우(79)씨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온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자주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목욕탕이 생기기 전에 10㎞ 이상 떨어진 읍내 목욕탕을 이용했다. 대산면에는 1970년대에 공중목욕탕이 있었지만, 인구가 줄면서 사업성이 없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읍내에 목욕 가면 버스비 3600원에다 목욕비 4500~5000원과 음료수 등을 합하면 1만원가량이 들었다. 황씨는 “지금은 왕복 교통비 1300원씩 왕복 2600원에다 목욕비 1000원을 더하면 5000원이 채 안 든다”고 했다. 임성호(69)씨도 “물이 미끌미끌하고 진짜 좋아서 일주일에 세번 온다. 각 가정에 식수로 들어가는 부안댐의 상수도용 물이 공급되기 때문에 마셔도 될 정도”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 목욕탕은 사업비 2억5000만원을 들여 지난해 5월1일 문을 열었다. 규모는 135.9㎡(41평)로 25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기초수급자와 장애인은 무료, 65살 이상 노인과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이는 1000원, 일반 주민은 2000원이다.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목욕탕 앞에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심지어 아침 6시에 나와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번호표를 발부해 운영하고 있다. 개관할 때보다 시설도 일부 확장했다. 처음에는 물탱크가 8t이었으나, 올해 3월에 보조 물탱크 6t 규모를 1억1000만원을 들여 추가로 설치했다. 전력도 40㎾에서 70㎾로 증설했다. 또 에너지 절감을 위해 대기 온도를 활용해 물을 데우는 방식의 공기열원 히트펌프 2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주로 이용하는 작은목욕탕은 분실물·안전 관리에 신경을 쓴다. 작은목욕탕에서 일하는 김순주(47)씨는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니까 우산과 신발을 바꿔 가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신발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탈의실 옷장까지 가지고 들어가는 바람에 흙이 떨어져 청소하기도 힘들다. 일부 손님은 깜빡하고 옷장 열쇠를 가져가기도 한다. 목욕탕 쪽은 지금은 열쇠 값 1만원을 받고 있다. 안전사고도 가끔 발생한다. 지난달 초에는 가족의 동행이 필요한 70대 할머니가 혼자서 와서 탕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머리와 허리를 다쳐 119에 실려갔다. 목욕탕은 그래서 보험에 가입했다.

전북도 ‘작은 목욕탕’ 1호
남 월·수·금, 여 화·목·토
동네 어르신 1000원 이용

하루 100여명…성공적 운영
주민들 사랑방 구실도 톡톡
근처 식당 매출 덩달아 늘어

고창군은 지난해 12월 한달간 수입과 지출을 따져봤다. 하루 평균 이용객이 103명이었다. 한달 수입이 239만4000원이고, 전기료·수도료·관리비 등 지출이 254만8000원이다. 손해가 15만4000원으로 나와 예상보다 적었다. 대산면 작은목욕탕 운영위원회 오시중 부위원장은 “작은목욕탕 사업이 애초 우려했던 운영비가 크게 들어가지 않고 많은 주민들이 애용하고 있어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만족을 나타냈다.

작은목욕탕이 생긴 뒤 고창군 대산면도 활기가 돌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의 지난해 인구수는 4003명이다. 40년 전인 1974년 1만3040명이었던 것에 견주면 3배 이상 감소했다. 그런데 작은목욕탕이 문을 열면서 평일에도 면소재지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작은목욕탕이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목욕탕 관리인 최철암(51)씨는 “목욕탕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원정 목욕’을 가지 않게 돼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목욕탕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양정자(60)씨는 “주민들이 목욕탕에 가려고 인근 전남 영광군으로 갔다가 이것저것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대산면뿐 아니라 영광군 대마면 주민들도 목욕탕을 이용하러 왔다가 식당에 온다”고 말했다.

주민 처지에선 아쉬움도 있다. 주민 강원(50)씨는 “목욕하러 읍내나 근처 영광군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 좋기는 하지만, 격일제로 운영하고, 저녁 6시면 문을 닫아서 불편하다. 탕을 확장해 매일 목욕하고 퇴근 뒤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저녁 8시까지 연장 운영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오미숙 고창군 삶의질향상팀장은 “농촌 인구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시설 규모를 키웠다 자칫 애물단지가 될 우려가 있다. 지금도 이용객이 적은 여름철인 7~8월에는 휴관을 하고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고창군은 지난해 대산면 등 5곳 면소재지에 작은목욕탕을 세웠다. 올해도 성내면 등 5곳 면소재지에 추가로 목욕탕을 조성할 예정이다. 전북도 삶의질정책과 이정석씨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남도지사에 출마하려는 한 예비후보가 작은목욕탕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다른 지역에서도 우수사례로 채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목욕탕은 작은도서관, 작은영화관과 연계돼 주민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대산면에는 작은목욕탕뿐만 아니라 작은도서관이 있고, 작은영화관도 준공식을 마쳤다. 작은목욕탕 바로 옆에 작은도서관이 2012년 6월 문을 열었다. 장서가 3000권이 넘는다. 직원 김민경(27)씨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태백산맥>과 <정글만리> 등 대하소설 등을 서점에서 구입하기가 부담스러운 40~50대들이 자주 대출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목욕탕에 있는 시간대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남편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고 한다.

고창군은 지난달 16일 동리국악당에서 작은영화관으로 꾸민 동리시네마 준공식을 했다. 작은영화관은 동리국악당 지하공간을 활용해 2개관 93석(3D 62석, 2D 31석)을 건립했다. 운영업체를 선정해 이달 중에 개관할 예정이다. 윤재구 전북도 삶의질정책과장은 “지역의 작은영화관 건립 사업은 문화를 향유하는 삶을 통해 주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고창/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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