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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 ‘지역 화폐’…지역경제·공동체 부활 ‘일석이조’

등록 2014-07-20 20:17수정 2014-07-21 14:31

지역화폐는 ‘인간의 얼굴을 한 돈’으로 불린다. 회원이 되면 돈 없이도 물건은 물론 미용·진료·강습 등의 품(서비스)을 거래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이(e)품앗이’의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재능 품앗이 사례들. 맨 아래 오른쪽 끝에 있는 사진은 지역화폐를 매개로 한 가상의 도서관인 경기도 수원 ‘구름위의 도서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 ‘별’.  서울이품앗이 홍보 영상 갈무리, 구름위의 도서관 제공
지역화폐는 ‘인간의 얼굴을 한 돈’으로 불린다. 회원이 되면 돈 없이도 물건은 물론 미용·진료·강습 등의 품(서비스)을 거래할 수 있다. 사진은 ‘서울이(e)품앗이’의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재능 품앗이 사례들. 맨 아래 오른쪽 끝에 있는 사진은 지역화폐를 매개로 한 가상의 도서관인 경기도 수원 ‘구름위의 도서관’에서 발행한 지역화폐 ‘별’. 서울이품앗이 홍보 영상 갈무리, 구름위의 도서관 제공
[지역 쏙] 진화하는 지역화폐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니 사방에서 ‘돈타령’이다. 돈 없이도 먹고살 방법은 없을까? 캐나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실험이 세계 5000여곳으로 퍼져나갔다. 국내에서도 점차 확산되고 있는 ‘지역화폐’ 이야기다. 과연 ‘다른 삶’은 가능할까?
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상현(39)씨는 ‘문’을 내고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뮤지컬과 합창, 클래식 연주 등의 공연을 즐긴다. ‘문’은 은평구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다. 일반 관람객들은 현금이나 카드로 관람료를 결제해야 하지만, 은평이(e)품앗이 회원들은 공연장에서 이름과 아이디(ID) 등을 적고 공연을 관람한 뒤 은평이품앗이 누리집에서 결제하면 된다. 박씨는 보드게임을 지도하거나 품앗이 행사 등을 진행하면서 문을 적립했고 2년 새 100여건의 물품과 재능을 회원들과 나눴다. 박씨는 “지역화폐를 통한 품앗이 활동이 문화체험으로까지 이어져 뿌듯하다. 사람들과 어울려 각자의 재능을 나누다 보면 즐거울 뿐 아니라 가계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 지자체까지 지역화폐 관심 ‘인간의 얼굴을 한 돈’으로 불리는 지역화폐가 제2의 부흥기를 맞았다. 1996년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20여년 만이다. 그동안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 소규모 단위로 시도돼 왔는데,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 지역화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원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화폐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화폐란 국가의 공식화폐와 달리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만 쓰이는 화폐다. 지역화폐로 회원들은 노동과 물건을 거래할 수 있다. 국내에는 대전 한밭레츠와 서울 은평이품앗이 등 전국 40곳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교환 거래체계(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의 줄임말인 레츠(LETS)로 널리 알려졌고, 지역통화와 품앗이 등의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지역화폐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회원 가입을 하면 ‘0’이 적힌 통장이 주어진다. 한 회원이 원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지역화폐 누리집에 올리고 다른 회원이 구매하면, 거래 금액에 따라 통장에 금액이 더해지거나 빠지는 식이다. 예컨대 홍길동이 집에서 키운 오이 한 바구니를 1000두루(한밭레츠 지역화폐 단위)에 올리고 거래가 이뤄지면, 홍길동의 통장에는 1000두루가 더해지고, 구매한 사람의 통장에서는 1000두루가 빠져나간 것으로 기록된다.

지역화폐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지속적인 경기침체 속에 지역경제 활성화와 경제 자립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 때문이다.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대형마트 등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탓에 지역 자본의 역외 유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역화폐가 생기면 돈이 제한된 지역 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순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물품·재능 누리집 올리고
가상화폐 매개로 회원끼리 바꾸는 식
재산축적 이전 단계의 화폐로 회귀
지역내 순환…역외 자본유출 막아

국내 40여곳 운용…서울에만 17곳
사업으로 보면 곤란, 신뢰 우선돼야
불황일수록 빛나는 새 방식의 삶

■ 국내 40여곳에서 지역화폐 운동 국내 대표적인 지역화폐 공동체는 대전 ‘한밭레츠’이다. 2000년 회원 70여명으로 시작한 한밭레츠는 7월 현재 680여명으로 회원이 늘었다. 지역화폐 단위는 ‘두루’를 사용한다. 지난 한해 동안 1만7300여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금액으로는 2억900만 두루에 달한다. 두루 사용이 점점 늘어나면서 처음에는 ‘쓸데가 없다’며 외면하던 식당, 세탁소 등의 참여도 늘고 있다.

한밭레츠의 도전은 의료영역까지 확대됐다. 2002년 민들레의료생협이 생겨 진료비도 지역화폐로 낼 수 있게 됐다. 한밭레츠 회원인 한의사가 두루를 진료비로 받으면서 시작됐는데, 진료과목도 내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비뇨기과, 신경정신과, 방사선과, 명상치유 등으로 확대됐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도 지역화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울 17개 자치구에서 은평이품앗이와 같은 품앗이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다. 6200여명(6월 말 기준)이 가입했다. 특히 2100여명의 회원과 58개의 가맹점이 가입한 은평이품앗이에선 일부 병원과 안경점, 분식점, 미용실 등에서도 이용가격의 10~30%를 지역화폐로 낼 수 있다.

경기 수원에서는 지역화폐를 매개로 가상의 도서관인 ‘구름위의 도서관’까지 등장했다. 지역화폐 ‘별’을 통해 책을 가진 회원끼리 서로 원하는 책을 빌려 보고, 동네 가게는 지역화폐를 가진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구름위의 도서관 김경훈 대표는 “지역화폐 운동은 지역 내 유휴자원을 이웃과 공유하면서도 지역의 작은 공동체와 지역경제를 살리고 회원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현재는 책만 하지만 종류를 다양하게 늘려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 시행착오도 있어 지역화폐 운동에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현재는 온배움터)이 발행한 ‘녹색화폐’가 대표적이다. 당시 녹색대학은 교사들에게 급여의 75%를 녹색화폐로 지급하는 등 녹색화폐를 적극적으로 유통시키려 했다.

하지만 녹색화폐는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5~6곳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녹색대학은 발행 6개월 만에 녹색화폐 사용을 중단했다. 이종원 온배움터 대표는 “발행에 앞서 신중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화폐 운동의 원조 격인 서울 송파품앗이(1999년 시작)는 지난해부터 지역화폐 거래가 전면 중단됐다. 지역화폐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가맹점이 늘어나고 회원 간 거래도 왕성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장미화 송파품앗이 회장은 “‘송파머니’를 많이 보유한 회원들로부터 ‘쓸 곳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반면 지역화폐 계좌가 마이너스가 돼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도 있어 논란이 됐다”고 말했다.

박현숙 한밭레츠 사무국장은 “지역화폐 운동을 ‘하나의 사업’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남는 게 없게 된다. 지역화폐는 천천히 사람 간의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지역화폐의 새로운 실험 강원도는 광역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처음으로 지역화폐를 도입하기로 했다. 2016년부터 시범 운영된다. 지역 자금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현재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고, 지난달에는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모여 공청회까지 열었다.

수원에서도 100여명의 시민들이 ‘수원시민화폐 추진모임’을 꾸리고 지역화폐를 운영하기로 했다. 시민 100여명과 농산물매장, 음식점, 생활용품점 등이 10만원씩을 내 9월부터 3개월간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광역 단위의 지역화폐 실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도 크다. 실제 지난 3월부터 지역화폐 사업을 시범 실시하겠다고 밝혔던 인천시는 “시민단체 요구로 5000만원의 예산까지 책정했지만, 대도시엔 실효성이 없다”며 태도를 바꿔 한발 물러섰다.

김선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상임이사는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지역통화를 합시다’는 식으로 이익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사용하다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지역통화는 동력을 잃게 된다. 제도화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재천 춘천녹색화폐센터 대표는 “경제가 불황일 때 지역화폐가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광역 단위 첫 시도인 만큼 서두르지 말고 주민 스스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춘천/박수혁 기자, 전국종합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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