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좌천시장 주민 박무련씨가 지난달 25일 수해를 당한 자신의 집을 둘러보며 시름에 잠겨 있다.
‘수해 시름’ 부산 기장 이재민들
살림살이도 다 떠내려가고
집안은 진흙 범벅, 벽엔 구멍
40여 가구 주민 아직도 체육관 신세
이웃집 방한칸서 일곱 식구 살기도
군 “체육관 3층서 차례 지내게”
살림살이도 다 떠내려가고
집안은 진흙 범벅, 벽엔 구멍
40여 가구 주민 아직도 체육관 신세
이웃집 방한칸서 일곱 식구 살기도
군 “체육관 3층서 차례 지내게”
4일 오전 부산 기장군 장안읍 좌천시장 앞 도로는 깨끗했다. 불과 열흘 전 시간당 최고 130㎜의 폭우로 수해를 당한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 들머리의 잡화가게엔 팔려고 내놓은 상품이 보이지 않았다. 가게 주인 박무련(82·여)씨는 “수해 때 수천만원어치 물건도, 가재도구도 다 물에 떠내려갔다”고 말했다.
가게에 딸린 방의 벽 아래쪽엔 사람 머리 크기의 구멍들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방바닥엔 진흙이 누렇게 말라 있었고, 얼룩진 벽지는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방 모서리에는 나무 지지대가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이웃집 방 한칸을 빌려 일곱 식구가 함께 지내고 있는 박씨에게 추석은 남의 일이다.
박씨는 “벽에 구멍도 많이 나 집이 무너질 것 같아 지지대로 집을 지탱하고 있다. 자식들이 찾아와도 어떻게 음식을 장만하고 어디서 잠을 재워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에게 이번 추석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장안읍 시장마을의 농로 한쪽엔 진흙 범벅이 된 텔레비전과 의자 등 가재도구들이 쌓여 있었다. 바로 옆 논엔 쓰레기들이 고개 숙인 벼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동해남부선 철로 부근 농가는 텅 비어 있었고, 담벼락은 무너진 상태였다. 빈집의 안방 벽면에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흙이 묻어 있었다. 수해 때 물이 차오른 흔적이었다. 이미 방에는 시커먼 곰팡이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뒷마당 텃밭은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기장군에는 지난달 25일 폭우로 740가구 166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미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40여가구 60여명의 주민들은 일광면 국민체육센터에서 지내고, 나머지 대부분의 주민들은 친척집 등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을 집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에 눈만 뜨면 집으로 달려가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국민체육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주민 정주용(53)씨는 “추석은 집에서 보내고 싶은데, 담도 무너지고 벽도 사라져 복구 작업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가재도구도 다 잃어버렸다. 벽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 벽지도 못 바른다.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슴을 쳤다.
기장군은 폭우 피해액이 900억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재난안전기본법의 특별재난 국고 지원 기준액인 90억원의 열배에 이른다. 부산시는 5일까지 소방방재청과 함께 조사를 펼쳐 피해액이 최종 집계되면, 기장군 등 국고 지원 기준액이 넘는 모든 구·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기장군 관계자는 “추석 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재민들이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국민체육센터 3층 체육관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