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복 대전빈들교회 목사(맨 왼쪽)가 교회 설립 30돌을 맞아 20일 사랑의 찻집을 열어 찾아온 이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다.
1984년 오정동 지하서 문열어
이듬해 공단지역으로 옮겨
산업선교 맥잇는 민중교회 우뚝
노동야학부터 북한선교까지
시대도 사람도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바닥’ 지켜와
이듬해 공단지역으로 옮겨
산업선교 맥잇는 민중교회 우뚝
노동야학부터 북한선교까지
시대도 사람도 바뀌었지만
변함없이 ‘바닥’ 지켜와
20일 오전 11시30분, 대전빈들교회 30돌을 기념하는 첫 행사인 ‘사랑의 찻집’이 대전시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 앞 ‘수다떠는 도서관’에서 열렸다. 김규복(63) 빈들교회 목사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전옥경(43·나비꿈작은학교 교사), 이미화(52)씨 일행이 들어서자 그의 큰 눈엔 반가움이 피어났다. 그를 상징하던 카리스마는 이내 자취를 감췄다.
인디밴드 파인애플 밴드의 박홍순씨가 재능기부에 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 창밖에는 잔잔한 비가 내렸다. 노랑, 빨강 단풍으로 물든 보문산의 만추가 더 선명해졌다. 찻잔에 향 고운 국화꽃이 피었다. “떼 주는 행사는 해도 후원 행사는 잘 안 합니다. 찻집을 연 것은 그동안 빈들교회를 사랑해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상처 입은 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김 목사가 설명했다.
빈들교회는 30년 전인 1984년 9월17일 대전 오정동 지하에서 문을 열었다. 1985년 공단지역인 대화동으로 옮겨 민중교회로 우뚝섰다. 1970~80년대 노동운동을 이끈 대한예수교장로회 산업선교회의 맥을 계승해 대전의 1세대 노동계 활동가들을 교육시키고 ‘바닥을 하늘로 섬기며 작지만 희망을 나누는 교회’로 뿌리내렸다.
연혁을 되짚던 김 목사는 1987년이 노동운동의 중요한 기점이라고 꼽았다. 1987년은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노동조합이 결성된 때다. 그 뒤 노동조직은 다양하게 발전해 정치권 진출도 이뤘다. 그러나 빈들교회는 변함없이 밑바닥 민중 곁을 지켰다. 노동자야간학교, 종일 탁아시설, 재가복지회, 무료공부방, 일용건설노동자센터, 노조지도자 교육 등은 이 교회의 80년대 성과다. 90년대는 산재추방운동을 주도하며 청소년·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결식아동·실업자·노숙인·노점상을 위한 운동도 펼쳤다. 또 귀농학교를 세우고 충남 금산에 생명마을을 조성했다. 2000년대는 도시빈민과 노인복지, 철거민, 결혼이주여성, 북한선교 등 통일사업, 아파트공동체 운동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모두 바닥을 하늘로 삼아 한 일이었다.
김 목사는 “소모임을 통해 밑에서부터 사회개혁 세력을 연대하는 산업선교 방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빈들은 민주회복, 평화통일, 동북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연뿐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조직 생태계를 회복하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빈들교회는 28일 빈들문화제, 다음달 23일 교회 설립 30년 감사예배를 한다. (042)622-3389.
글·사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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