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이승엽(왼쪽 셋째) 조합장과 직원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경기 고양 ‘로컬푸드 직매장’ 가보니
지난 30일 아침 8시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일산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농산물을 싣고 오는 농민들이 모여들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00여명의 농민들은 상추, 배추, 고추, 오이, 가지, 호박 등 자신이 기른 농산물을 500㎡ 남짓한 매장에 가지런히 진열했다. 새벽에 수확해 포장한 뒤 가격표를 붙인 것이다. 매장에는 상품을 팔러 온 농민들의 이름과 얼굴, 생산지, 연락처 등이 나붙었다.
일산동구 장항동에서 농지 3300여㎡를 빌려 밭농사를 짓는 강성국(57)씨는 지난 5월 로컬푸드 직매장이 개장한 뒤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한다. 이날도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상추, 돌산갓, 콜라비 등을 수확한 뒤 정성스럽게 닦고 포장해 5상자를 내왔다. 며칠 전까지 잘 팔던 부추는 최근 서리를 맞아 더 이상 내놓을 수 없게 됐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긴 뒤 강씨는 품목 선정부터 판매까지 모든 농사 과정을 로컬푸드에 맞추고 있다. 이전에는 적은 품목을 지어 도매상인에게 넘겼는데, 잘해야 본전치기에 그칠 때가 많았다.
가격을 매기는 것도 생산자인 강씨 마음이다. 경매 시세표, 인근 대형마트의 농산물 가격 등을 참고해 적당한 선에서 책정하는데, 비싸면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싸면 남는 게 적어 고민이다. 다행히 강씨가 낸 상품은 대부분 노지에서 재배한 농작물로 인기가 좋은 편이어서 날마다 거의 ‘완판’이다. 이렇게 해서 강씨가 손에 쥔 돈은 하루 7만~10만원. 로컬푸드 직매장 개장 이래 월평균 200만원가량 벌어들이고 있다.
강씨는 “재고를 남기지 않아야 해서 상품 질과 포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 직매장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맛이 어떠냐’, ‘농약은 진짜 안 쳤냐’ 등의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전북 완주서 생긴 뒤
올 10월까지 전국 42곳서 인기
생산-소비자간 이동거리 줄여
식품 신선도와 이익 극대화 ‘윈윈’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장거리 이동과 다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전국에 잇따라 개설돼 농민과 소비자 양쪽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 거리를 줄여 식품의 신선도를 극대화하고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2012년 전북 완주군 용진농협에 첫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긴 이후 올해 10월까지 지역농협에만 42개의 직매장이 개설됐다. 농업인단체 등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영농법인 형태의 직매장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 60여곳의 직매장이 영업 중이다. 직매장을 통해 농민은 경매 시세보다 높은 값에 농산물을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싱싱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20% 이상 싼 값에 살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강씨처럼 로컬푸드 직매장을 판로로 삼은 농민은 일산농협에만 184명으로 대부분 중소농들이다. 일산농협 직매장에는 하루 평균 700여명의 소비자가 찾아와 1200만원어치를 사간다. 개장 이후 5개월 동안 출하 농민 66명이 월평균 1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개장 시간인 오전 9시도 안 돼 부지런한 소비자들이 더 싱싱한 채소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2~3일에 한번씩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장을 본다는 풍동 주민 배주하(41)씨는 “싱싱하고 가격도 착하고 무엇보다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우리 마을에 생겨 기분이 좋다. 주말농장을 해봐서 집에서 길러 먹는 맛을 아는데, 그런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배씨는 이날 송포쌀 10㎏과 계란 1판, 부추, 갓, 쪽파, 배추 등을 샀다.
오전 10시께 직매장에는 주민 수십명이 줄을 이었다. 마두동 주민 천아무개(46)씨는 “지역 농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판매해 믿음이 간다.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도 살 수 있다”며 장바구니에서 ‘노지 대파’를 꺼내 보였다.
매장에 진열된 상품이 줄어들면 발 빠른 농민들은 물건을 보충한다. 농민들은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매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언제든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어 시간대별로 물량을 조절하거나 부족한 상품은 수시로 보충하면 된다.
매장 운영 책임자인 전찬욱 일산농협 풍산지점장은 “로컬푸드는 일일이 손으로 다듬고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야 해 중소농이 경쟁력이 있고, 실제로도 중소농들이 끌어가고 있다. 대농은 들인 시간에 비해 물량을 많이 내지 못해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려 농사짓고 포장하므로 물건이 거칠어 소비자의 선택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농, 대농 제한은 없으며 누구든지 농약 사용 기준과 작물 재배법·포장법 등 4일간 교육을 받으면 매장에 상품을 낼 수 있다. 판매 금액 가운데 수수료 10~15%가량을 뺀 나머지는 생산자 몫이다. 대장동에서 대형 농장을 운영하는 문옥금(52)씨는 “생산량이 많아 대부분 서울의 경매시장에 넘기지만 가까운 직매장에서 소비자와 만날 수 있고 쏠쏠하게 용돈벌이도 돼 매일 조금씩 물건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직매장에는 품목별로 고추는 김아무개, 호박은 이아무개 하는 식으로 단골도 생겨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물건 언제 나오느냐’고 직접 전화하기도 한다고 한 매장 직원은 귀띔했다. 직매장이 생긴 뒤 마을 인심이 야박해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먹고 남는 농산물을 예전에는 주변에 나눠줬지만 이제는 모두 직매장에 내다 판다는 것이다. 뽕나무 2그루를 기른 한 농민은 그동안 술 담그고 나눠 먹던 오디를 내다 팔아 올해 150만원을 벌었다고 이 직원은 전했다.
오후 6시가 되자 매장에 수북이 쌓였던 농산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폐장 시간인 저녁 7시까지 선택받지 못한 상품은 다음날 도매시장으로 팔려가거나 복지재단에 기부돼 홀몸노인의 반찬거리로 쓰인다.
“집에서 길러 먹는 맛이 난다”
“농민 이름 내걸어 믿음 간다”
불합리한 유통구조 바꾼다 고양시에는 일산농협 말고도 비슷한 규모의 원당농협·벽제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올해 문을 열었다. 지난해 개장한 농협고양유통센터 직거래장터와 로컬푸드 전용관, 고양체육관 새벽장터, 행주치마장터 쇼핑몰 등 고양시가 운영하는 직매장 4곳과 농업회사법인인 ㈜힐링팜까지 합하면 모두 8개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2년 새 고양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내년에는 송포농협 등 직매장 2곳이 더 개설될 예정이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직매장의 연 매출이 67억원을 기록할 만큼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고양시 관계자는 말했다. 이승엽 벽제농협 조합장은 “지역 농산물이 다른 지역 도매시장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시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유는 뭘까. 고양시는 수십년 동안 도시근교농업을 해온 1만여가구의 중소농이 있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근교농업지역이다. 여기에 100만명의 도시 소비자가 공존해 10~20분 안에 직거래가 가능한 조건이 갖춰졌다. 로컬푸드의 최적지인 셈이다. 고양시와 농협은 매일 잔류농약검사, 2주마다 정밀조사를 실시하는 등 안전한 농산물 공급을 통한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허용 기준이 넘는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1개월간 출하가 정지되고, 두번째 적발되면 3개월 정지, 세번째 적발 땐 영원히 출하 자격을 박탈한다. 지금까지 3개 농가가 1개월씩 출하 정지를 당했다. 매장 곳곳에는 작은 전자저울을 둬 소비자가 직접 농산물의 무게를 잴 수 있도록 했다. 또 고양시와 농협은 개장 2년 전부터 ‘단일품목 대량생산’ 대신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농산물 생산 시스템을 개편해 품목과 품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준비했다. 로컬푸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품목 다양화 등 과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과 농민들은 비수기를 대비해 고춧가루, 딸기잼 등 농산물 가공식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종현 고양시 농업정책과장은 “우선 로컬푸드 인증제와 겨울용 비닐하우스, 잉여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냉장고 보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식품 가공센터와 로컬푸드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점 개장 등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올 10월까지 전국 42곳서 인기
생산-소비자간 이동거리 줄여
식품 신선도와 이익 극대화 ‘윈윈’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장거리 이동과 다단계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 전국에 잇따라 개설돼 농민과 소비자 양쪽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동 거리를 줄여 식품의 신선도를 극대화하고 농민과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2012년 전북 완주군 용진농협에 첫 로컬푸드 직매장이 생긴 이후 올해 10월까지 지역농협에만 42개의 직매장이 개설됐다. 농업인단체 등이 만든 협동조합이나 영농법인 형태의 직매장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 60여곳의 직매장이 영업 중이다. 직매장을 통해 농민은 경매 시세보다 높은 값에 농산물을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싱싱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20% 이상 싼 값에 살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30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새벽에 수확해 갓 출하된 싱싱한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농민 이름 내걸어 믿음 간다”
불합리한 유통구조 바꾼다 고양시에는 일산농협 말고도 비슷한 규모의 원당농협·벽제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올해 문을 열었다. 지난해 개장한 농협고양유통센터 직거래장터와 로컬푸드 전용관, 고양체육관 새벽장터, 행주치마장터 쇼핑몰 등 고양시가 운영하는 직매장 4곳과 농업회사법인인 ㈜힐링팜까지 합하면 모두 8개의 로컬푸드 직매장이 2년 새 고양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내년에는 송포농협 등 직매장 2곳이 더 개설될 예정이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직매장의 연 매출이 67억원을 기록할 만큼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고양시 관계자는 말했다. 이승엽 벽제농협 조합장은 “지역 농산물이 다른 지역 도매시장에 갔다가 되돌아오는 불합리한 농산물 유통구조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시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유는 뭘까. 고양시는 수십년 동안 도시근교농업을 해온 1만여가구의 중소농이 있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근교농업지역이다. 여기에 100만명의 도시 소비자가 공존해 10~20분 안에 직거래가 가능한 조건이 갖춰졌다. 로컬푸드의 최적지인 셈이다. 고양시와 농협은 매일 잔류농약검사, 2주마다 정밀조사를 실시하는 등 안전한 농산물 공급을 통한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허용 기준이 넘는 잔류농약이 검출되면 1개월간 출하가 정지되고, 두번째 적발되면 3개월 정지, 세번째 적발 땐 영원히 출하 자격을 박탈한다. 지금까지 3개 농가가 1개월씩 출하 정지를 당했다. 매장 곳곳에는 작은 전자저울을 둬 소비자가 직접 농산물의 무게를 잴 수 있도록 했다. 또 고양시와 농협은 개장 2년 전부터 ‘단일품목 대량생산’ 대신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농산물 생산 시스템을 개편해 품목과 품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준비했다. 로컬푸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품목 다양화 등 과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협과 농민들은 비수기를 대비해 고춧가루, 딸기잼 등 농산물 가공식품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조례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종현 고양시 농업정책과장은 “우선 로컬푸드 인증제와 겨울용 비닐하우스, 잉여 농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저온냉장고 보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농식품 가공센터와 로컬푸드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점 개장 등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고양/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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