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501오룡호’의 김계환 선장이 3일 오후 1시14분(현지시각 4시14분)께 동생 김세환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진은 김세환씨가 공개한 국제전화 통화내역. 부산/연합뉴스
절친한 선배 선장에 연락뒤 실종
퇴선명령 하고 배와 운명 함께한듯
한국인 주검 3구 등 11구 추가 인양
실종 41명…가족들 “구조 서둘러야”
퇴선명령 하고 배와 운명 함께한듯
한국인 주검 3구 등 11구 추가 인양
실종 41명…가족들 “구조 서둘러야”
“선원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면목으로 살겠습니까.”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 침몰한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 김계환(44) 선장이 사고 해역 근처에 있던 명태잡이 어선 ‘96오양호’ 이양우 선장과 한 마지막 교신에서 ‘배와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3일 <한겨레>가 입수한 두 어선 교신 내용과 사조산업 쪽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일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이던 ‘501오룡호’는 오전 9시30분(이하 한국시각)께 물고기 창고에 물이 찼다. 낮 12시~오후 1시 사이에 ‘501오룡호’는 근처를 항해 중이던 카롤리나 77호(러시아 선적)에서 펌프를 빌려 물을 빼려고 시도했다. 이어 이날 1시께 김 선장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이 선장과의 교신에서 “물고기 창고에 찼던 바닷물을 절반 넘게 빼냈다.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분 뒤인 오후 1시10분께 ‘501오룡호’는 왼쪽으로 45도가량 급격히 기울어졌다. 김 선장은 이 선장에게 “균형을 잡은 듯한 배가 10분 만에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어져 퇴선 명령을 받았다”고 긴급 연락을 보냈다. 이어 오후 1시30분께 두 사람은 다시 교신했다.
“형님께 마지막 하직인사 하고 가야 안 되겠습니까.”(김 선장)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선원들을 안전하게 퇴선시키고 너도 꼭 살아서 나와라.”(이 선장)
“이제 배 안의 등이 전부 꺼졌어요. 선원들을 저렇게 만들어놓고 무슨 면목으로 살겠습니까.”(김 선장)
“제발 그러지 말고, 선원들 안전하게 퇴선시키고 나와라.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많다. 별일 아닐 수 있다. 계환아. 전부 살아나서 부산에서 소주 한잔하자.”(이 선장)
이후 교신은 끊어졌다. 김 선장의 가족과 사조산업 등에 확인한 결과, 김 선장과 이 선장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각별한 사이였다. 김 선장은 2004~2007년 이 선장 아래에서 1등항해사로 근무했다. 김 선장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정말 친하게 지냈다. 아들한테서 이 선장과 서로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함께한 듯하다. 침몰하면서 배 안에 만들어진 에어포켓(뒤집힌 선내에 갇힌 공기)에 의존해 생존할 가능성도 있지 않으냐. 빨리 인양을 해서 구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는 지금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월호 사고 이후 꾸려진 국민안전처는 무슨 구실을 하는가. 제발 좀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사조산업은 침몰사고 3일째인 이날 오후 6시 현재 사고 해역 근처에서 수색·구조 작업을 통해 11명의 주검을 인양했다고 밝혔다. 이들 가운데 한국인은 냉동사 김태중(55)씨, 2등항해사 김범훈(24)씨, 3등항해사 김순홍(21)씨 등 3명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고의 사망자는 첫날 구조된 뒤 숨진 조기장 이장순(50)씨 등 한국인 4명을 포함해 12명으로 늘었다. 구조자는 7명, 실종자는 41명이다.
한편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어젯밤과 오늘 현지로 출발했다”고 밝혔다. 신속대응팀은 러시아 정부와 협조하고 사상자나 유가족이 항구에 도착할 경우 현장 지원을 하게 된다. 국민안전처 산하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이날 수사팀을 꾸려 선체 결함 가능성 등 ‘501오룡호’ 침몰사고 원인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부산/김영동 기자, 이용인 기자 ydkim@hani.co.kr
1일 오후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의 1753t급 명태잡이 트롤선인 501오룡호의 모습. 사조산업 제공, 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