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낙동강 상류를 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제련소 1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흰색 수증기가 하늘을 덮고 있다. 김일우 기자
석포제련소 불법 공장 찬반 논란
19일 경북 봉화 곳곳에는 ‘석포 경제 말살하는 외부세력 원천봉쇄하자’는 펼침막과 ‘석포제련소 3공장 결사반대, 아름다운 낙동강 우리가 지켜낸다’는 펼침막이 함께 내걸려 있었다.
최근 봉화 주민들끼리 “먹고살기냐 환경이냐?”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은 ㈜영풍이 봉화에서 4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석포제련소 때문이다. 석포제련소가 불법으로 공장을 추가로 만들어 운영하려던 사실을 올해 초 뒤늦게 주민들이 알게 됐다. 이후 제련소에서 일어난 환경오염이 알려지면서 더 시끄러워졌다. 이해관계에 따라 주민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주민에게는 제련소는 ‘봉화를 먹고살게 해주는 젖줄’이다. 하지만 다른 주민에게는 ‘건강과 환경을 위협하는 시설’이다.
1970년 ‘개발 우선’ 시류 타고 설립
지역주민 과반이 근무 ‘봉화의 삼성’
최근 3공장, 허가규모 3배 불법 건축
이행강제금 14억 낸 뒤 승인받아 차량 사고로 황산 누출되고
발암물질 카드뮴 기준치 갑절
주민들 불안…공장 반대위 꾸려
일부선 “지역경제 위해 감수해야” ■ 낙동강을 끼고 자리잡은 ‘봉화의 삼성’ 경북 북부에 있는 봉화군은 강원도 태백과 붙어 있다. 봉화는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 예로부터 봉화 앞에는 ‘두메산골’이란 꾸밈말이 붙었다. 지역에서는 봉화를 영양군·청송군와 함께 경북의 오지 중의 오지로 꼽는다. 세곳 영문 머리글자를 딴 비와이시(BYC·봉화 영양 청송)에서도 봉화는 으뜸이다. 19일 <한겨레> 기자가 대구에서 봉화로 취재 갈 때는 군데군데 도로가 얼어 있어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봉화의 전체 면적(1201㎢) 가운데 94% 이상이 임야나 논, 밭, 과수원이다. 봉화군 인구 3만39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농사를 짓는다. 봉화에서도 석포면은 강원도와 인접한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다. 워낙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 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석포면을 ‘강원남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원한 영남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석포면을 지나 경북 안동으로 흘러간다. 석포면 한가운데에는 낙동강을 끼고 영풍그룹의 계열사인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가 들어서 있다. 주로 아연 등을 만드는 비철금속 제련공장이다. 1공장과 2공장의 면적을 합쳐 1만㎡가 넘는 규모다.
이 제련소는 지역 경제의 비중이 높아 ‘봉화의 삼성’이라 불린다. 석포면 전체 주민은 1690명이다. 제련소에서 직접 고용한 직원만 520여명이고 협력업체 직원까지 더하면 제련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1000명이 넘는다. 석포면 주민 상당수는 제련소 근처에서 식당이나 술집 등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린다.
환경단체들은 영남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 최상류에 제련소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은 뒷전이고 개발이 우선이던 시대 상황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제련소는 1970년 10월 만들어졌다. ㈜영풍 누리집에서는 “아연괴를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아연제련소를 준공함으로써 비철금속 제련업에 진출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석포면에 제련소가 들어선 것은 당시 석포면 대현리에 국내 최대 규모 납·아연광산인 연화광산(98년 8월 폐광)이 있었기 때문이다.
■ 제련소, 공사 끝내고 건축 허가 신청?
올해 초 3공장 불법 건축을 주민들이 뒤늦게 알게 되면서부터 석포제련소가 도마 위에 올랐다. 3공장은 아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아연 찌꺼기를 재활용하는 처리시설이다. 석포제련소는 봉화군에 4151㎡ 규모로 3공장을 짓겠다며 건축 허가를 받았다. 1400억원을 들여 2012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지어진 3공장 규모는 건축 허가의 3배가 넘는 1만5933㎡나 됐다. 지난해 9월21일 현장 조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적발한 봉화군은 이후 두차례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라며 제련소에 계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제련소는 철거하지 않았다. 봉화군은 지난 3월7일 제련소에 14억640여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물렸다.
제련소는 엿새 만에 이행강제금을 내더니, 같은 달 31일 봉화군에 다시 건축허가 및 지구단위계획변경 신청을 냈다. 이행강제금을 냈으니 3공장을 합법 건축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근 봉화군은 “현실적으로 3공장을 철거하는 것이 어렵다”며 제련소의 건축허가 및 지구단위계획변경 신청을 승인해줬다. 제련소 관계자는 “아직 3공장은 가동하지 않고 있으며, 언제 가동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주민들 불안하게 하는 잇따른 사고
불법 건축 논란 이후 잇따른 석포제련소 사고로 주민들의 불안이 커졌다. 지난달 5일 제련소에서 가까운 낙동강 근처 도로에서 제련소를 오가던 탱크로리 차량이 넘어지면서, 실려 있던 황산 200ℓ가 낙동강에 흘러들어갔다. 이날 밤 제련소 아래쪽 강에서는 피라미와 버들치 등 물고기 수백마리가 죽은 채 물 위로 떠올랐다.
지난 1일에는 석포제련소의 작업장 공기에서 발암물질인 카드뮴이 기준치의 갑절 이상 검출된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석포제련소의 작업환경 실태를 점검한 결과, 공기 중 카드뮴 농도가 작업환경 노출 기준치(공기 1㎥당 0.01㎎)를 2.5배 초과한 0.0252㎎이 검출됐다. 공기 중 황산도 작업환경 노출 기준치(1㎥당 0.2㎎)를 넘은 0.293㎎이 나왔다. 제련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카드뮴 등으로 인한 직업병 유소견자는 2012년 26명, 지난해 26명, 올해 21명 등 매년 20여명씩 꾸준히 발생해왔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련소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환경안전연구소에 의뢰해 석포제련소 인근 토양을 분석한 결과, 석포초등학교 부근에서 카드뮴이 토양오염 우려 기준(4㎎/㎏)보다 갑절 높은 8.94㎎으로 측정됐다. 당시 한 의원은 “제련소 주변에 있는 야산의 나무가 말라죽고, 제련소 방류수 배출구와 주변 하천은 산성 유출수와 중금속으로 하천 바닥이 붉게 변하는 적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밝혔다.
■ 경제와 환경 사이에서 엇갈리는 주민들
석포제련소를 두고 봉화 주민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제련소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석포면 주민 상당수는 일자리 등 지역 경제를 위해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석포면의 한 주민은 “환경문제에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련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먹고살고 있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포면 바로 아래 지역인 소천면 주민들은 불법으로 지어진 3공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월 봉화에서는 소천면 주민을 중심으로 석포제련소 3공장 불법 건축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농민 최만억(53·소천면 분천리)씨는 “제련소를 기준으로 낙동강 상류와 하류 쪽에서 잡히는 물고기 종류와 숫자가 아예 다르다. 상류에서는 쏘가리와 버들치 등이 잡히지만 하류에서는 거의 피라미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더군다나 제련소에서 계속 사고가 일어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불법으로 지은 만큼 3공장만이라도 가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정부가 제련소 주변 환경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실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제련소를 옮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은 “영남 지역주민 식수원인 낙동강 최상류에 강을 끼고 대규모 제련소가 있기 때문에 제련소는 봉화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제련소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등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봉화/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지역주민 과반이 근무 ‘봉화의 삼성’
최근 3공장, 허가규모 3배 불법 건축
이행강제금 14억 낸 뒤 승인받아 차량 사고로 황산 누출되고
발암물질 카드뮴 기준치 갑절
주민들 불안…공장 반대위 꾸려
일부선 “지역경제 위해 감수해야” ■ 낙동강을 끼고 자리잡은 ‘봉화의 삼성’ 경북 북부에 있는 봉화군은 강원도 태백과 붙어 있다. 봉화는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 예로부터 봉화 앞에는 ‘두메산골’이란 꾸밈말이 붙었다. 지역에서는 봉화를 영양군·청송군와 함께 경북의 오지 중의 오지로 꼽는다. 세곳 영문 머리글자를 딴 비와이시(BYC·봉화 영양 청송)에서도 봉화는 으뜸이다. 19일 <한겨레> 기자가 대구에서 봉화로 취재 갈 때는 군데군데 도로가 얼어 있어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봉화의 전체 면적(1201㎢) 가운데 94% 이상이 임야나 논, 밭, 과수원이다. 봉화군 인구 3만39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농사를 짓는다. 봉화에서도 석포면은 강원도와 인접한 북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다. 워낙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이라 주민들은 우스갯소리로 석포면을 ‘강원남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태백시에서 발원한 영남 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이 석포면을 지나 경북 안동으로 흘러간다. 석포면 한가운데에는 낙동강을 끼고 영풍그룹의 계열사인 ㈜영풍이 운영하는 석포제련소가 들어서 있다. 주로 아연 등을 만드는 비철금속 제련공장이다. 1공장과 2공장의 면적을 합쳐 1만㎡가 넘는 규모다.
지난 19일 경북 봉화 곳곳에는 ‘석포주민 얕잡아보는 외부세력에 대해 목숨걸고 투쟁하자’며 석포제련소를 그냥 두자는 펼침막과 ‘석포제련소 3공장 결사 반대, 살아나는 낙동강을 영풍이 또 죽이네’란 제련소 반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김일우 기자, 환경운동연합 제공
지난 19일 경북 봉화 곳곳에는 ‘석포주민 얕잡아보는 외부세력에 대해 목숨걸고 투쟁하자’며 석포제련소를 그냥 두자는 펼침막과 ‘석포제련소 3공장 결사 반대, 살아나는 낙동강을 영풍이 또 죽이네’란 제련소 반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김일우 기자, 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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