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사람은 2000년에 익명으로 성금을 처음 기부한 뒤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올해로 15년째 몰래 나타나 세밑을 훈훈하게 달궜다.
29일 오후 3시40분께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 4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전화를 걸었다. 주민등록업무를 담당하는 임나경씨가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주민센터 근처 세탁소 옆에다 A4용지를 담는 상자를 놓고 간다. 돈이 있으니 빨리 가져가라. 꼭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말하고 끊었다.
거기에는 지폐와 동전 5030만4390원이 있었다. 지폐 5만원권이 100장씩 10묶음 들어있고 돼지저금통도 있었다. 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446개, 100원짜리 동전 786개, 50원짜리 동전 37개, 10원짜리 동전 94개가 있었다. 나라를 알 수 없는 외화 동전 2개도 있었다.
이 천사가 지난해까지 14년째 15차례에 걸쳐 기부한 성금은 모두 3억4699억원7360만원이다. 올해 금액까지 합하면 모두 3억9730만1750원이다. 이번에도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신원은 여전히 안개 속에 남아있다.
최성식 전주시 노송동장은 “얼굴없는 천사의 기부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소중히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이 익명 기부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2009년 12월 노송동주민센터 화단에 ‘얼굴없는 천사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얼굴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씌여 있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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