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강원도 양양에서 발생한 가족 4명 화재 사망사건은 이웃에 살고 있는 40대 여성이 1800만원의 빚 때문에 저지른 범행으로 조사됐다. 특히 피의자는 일가족을 죽인 뒤 차용증을 위조해 유족들에게 돈까지 받아내려 한 혐의도 추가로 밝혀졌다.
강원 속초경찰서는 9일 박아무개(37·여)씨의 집에 불을 질러 박씨와 자녀 3명 등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한 혐의(현존건조물방화치사 등)로 이아무개(41·여)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9시30분께 양양군 현남면 박씨의 집에 찾아가 박씨와 큰아들(13), 딸(9), 막내아들(6) 등 일가족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인 뒤 잠이들자 미리 준비한 휘발유로 불을 질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숨진 박씨와 학부모 모임을 통해 알게 된 뒤 ‘언니, 동생’으로 부르며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박씨의 남편 이아무개(44)씨는 교통사고 요양치료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 사고 당시 집에 없었다.
경찰 조사결과를 보면, 이씨는 2013년 9월 24일 박씨에게 1800만원을 빌리면서 3년간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했지만 경제사정이 나빠져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일가족을 살해해 돈을 빌린 사실을 숨길 목적으로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씨의 계획된 범행은 사건 현장의 주검 상태와 숨진 일가족의 혈액 등에서 수면제가 검출된 점, 현장에서 기름 냄새가 난 점 등을 수상히 여긴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일반적인 화재 현장의 주검은 뜨거운 불길을 피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거나, 불길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지만 박씨 등 일가족은 거실과 방에서 편안하게 하늘을 보고 누워 잠을 자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방화사건에 무게를 두고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이씨가 사건 당일행적에 대해 모순된 진술을 하고 사건현장에 소방차와 동시에 도착해 과도하게 구조활동을 한 점, 피해자들의 사망 소식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는 점 등을 수상하게 여겨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사건 직후 박씨의 집 인근 폐회로 텔레비전에 이씨가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갔다가 출동하는 소방차를 뒤따라 현장에 다시 온 사실과 인근 도시에서 이씨가 사건당일 수면제와 음료수 등을 현금으로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자신의 채무 사실을 숨긴 채 위조된 차용증을 숨진 박씨의 유족에게 보여주며 오히려 돈을 갚으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또 경찰에 ‘피해자의 하의가 다 벗겨지고, 상의도 일부 올라갔었다’며 허위내용을 진술하는 등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1800만원의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일가족을 살해한 마음을 먹고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박씨가 스스로 불을 내 죽은 것처럼 속이려 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공범과 여죄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초/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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