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인 지난 3일 전주 한옥마을의 한 꼬치집 앞에 사람들이 주문을 하려고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 있다.
지나친 상업화 우려 목소리
“한옥마을 이름이 아깝네요. 비싸게 파는 길거리 음식 먹으려고 전라도 전주까지 고생하며 온 기분입니다.” “전주 한옥시장이라고 하자. 적어도 한옥이면 한옥답게, 그래도 한식을 팔면 이해를 한다. 꼬치니 빵이니 이런 간식거리를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한 포털사이트의 ‘전주 한옥마을 체험 평가하기’ 칸에 올라온 글이다. ‘관광 명소’로 떠오른 전북 전주 한옥마을의 씁쓸한 이면을 보여준다.
지난해 1년간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방문객은 592만명에 이른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전국에서 관광객이 밀려든다. 조선왕조 발상지 등 전주의 지역 특성을 활용해 고즈넉한 전통 한옥의 예스러운 멋을 관광산업에 접목한 결과다. 한옥마을은 ‘천년 고도’ 전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란 호평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싸구려 길거리 음식 파는 곳’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옥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관광객 늘자 길거리 음식점 급증
통행 힘들고 곳곳에 쓰레기 몸살
임대료도 뛰어 3.3㎡당 1억 달해
가게 쪼개기 극성, 세입자는 쫓겨나 전주시, 사람·차량 분산 정책뿐
‘슬로시티’ 재지정 준비도 관 주도
“주민과 소통…공동체 되살려야” ■ 상업·과밀화…한옥마을이 아프다 지난 3일 전주 한옥마을의 한 꼬치집 앞에 손님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 꼬치집과 같은 한옥마을 길거리 음식점들은 7~10㎡(2~3평) 규모로 좁다. 손님이 들어갈 내부 공간이 없다. 주문하려면 손님들이 가게 밖에 줄을 서야 한다. 일부 가게는 주말 하루 매출 1000만원을 올릴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고 한다.
한옥마을 주민 김아무개씨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기 위해 늘어선 관광객들 때문에 인도가 막혀 주민들이 통행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동네 곳곳에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관광객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동네 화단 곳곳에 처박아놓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구경꾼이 모이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면서 카페와 음식점들이 이곳으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전주문화재단이 지난달 발표한 ‘전주 한옥마을 문화·상업시설 조사’를 보면, 2013년(5월 기준)에 견줘 2014년(11월 기준) 식·음료시설과 숙박시설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식·음료시설은 81곳에서 142곳으로 61곳(75.3%) 늘었다. 식·음료시설 142곳은 음식점 41곳, 카페·전통찻집 61곳, 제과점·길거리음식점 등이 40곳이다. 숙박시설은 81곳에서 133곳으로 52곳(64.2%) 늘었다.
조사를 했던 허명숙 전주문화재단 연구원은 “한옥마을 전체 면적이 늘지 않은 상황에서 상업시설이 증가했다. 이는 기존 상업시설이 이른바 ‘쪼개기’를 통해 가게 규모는 줄이고 임대 가게 수를 늘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가게 임대료 급등이 길거리 음식점 확산을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주민 이아무개씨는 “사람이 몰리니까 장사가 잘된다. 따라서 임대료가 오르고 돈이 없는 상가 세입자가 떨어져 나간다. 비싼 임대료를 내고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자금 회수를 빨리 하려고 소규모 가게를 내고, 현금 거래를 하는 길거리 음식을 주로 판매한다”고 말했다.
실제 한옥마을 임대료는 가파르게 올랐다. 보증금과 월세를 합산하면 임대료가 3.3㎡(1평)당 1억원 가까이 되는 가게도 있다. 한옥마을에서 6년 넘게 장사를 한 주민은 “건물 주인이 월 임대료를 25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8배나 올려달라고 했다. 소송까지 갔지만 곧 가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옥마을에 사람이 몰리니까 건물 주인들이 직접 장사를 하려고 세입자를 내쫓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옥마을 관광객과 술집, 식당, 카페는 늘어나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 거주환경 악화로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학자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꼽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전주시 통계를 보면, 한옥마을 방문객은 △2010년 350만명 △2012년 493만명 △2014년 592만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반면, 한옥마을 인구는 △2010년 2083명 △2012년 1711명 △2014년 1322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경복궁 서쪽 한옥지구인 서촌처럼 전주 한옥마을도 원래 살던 주민들이나 영세 상인이 튕겨져 나가고 한옥지구의 독특한 매력도 점차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사람과 차량 분산에 치우친 대책
한옥마을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불만이 나오자 전주시는 대책을 마련했다. 한옥마을에 집중되는 사람·차량을 분산시키는 게 핵심이다. 한옥마을 주변에 1000면 규모의 주차장 마련 계획을 세웠다.
또 전주역~한옥마을 구간에 시내버스를 운영하고,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한옥마을 반대편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한옥마을까지 인도교(길이 90m, 너비 4m)를 설치하며, 한옥마을에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해 차량을 전면 통제하기로 했다. 이에 일부 한옥마을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진아무개(52)씨는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면 택배, 원재료 차량도 못 들어온다. 장사하는 사람 처지에선 너무 심한 조처”라고 호소했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인근 전통시장인 남부시장에 야시장을 지난해 10월부터 열었다. 한옥마을 방문객을 이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매주 금·토요일 밤에 운영한다. 박화성 한옥마을사업소장은 “관광객들이 야시장을 많이 찾으면서 남부시장 주변에 커피숍 4~5곳이 문을 열 정도로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야시장을 한옥마을과 연계해 전주만의 특색 있는 야간 관광 명소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시의 이런 대책이 사람·차량 분산에 치우쳐, 급격히 진행된 상업화 대처에는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가 최근 서촌 한옥지구에서 주택을 음식점으로 바꾸는 것을 금지하는 등 상업화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과 비교된다. 서촌에 술집과 식당, 카페가 난립하고 거주환경이 나빠져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서촌의 급격한 변화를 막으려고 내놓은 고강도 조처다.
■ 관보다는 주민이 나서야
전주 한옥마을은 2010년 국제슬로시티연맹 이사회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전주 한옥마을은 5년마다 이뤄지는 국제슬로시티연맹 실사를 올해 11월 받는다. 한옥마을의 급격한 상업화로 슬로시티 재지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에서 나온다. 실사에 대비해 지난달 29일 국제슬로시티 전주 한옥마을 서포터스 창립총회가 열려 회장 등 임원을 뽑았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관 주도’란 지적이 제기된다. 한옥마을에서 15년 넘게 산 김순석(52) 전주전통문화원 부원장은 “2002년 이후 5년가량 주민 스스로 한옥마을 공동체를 살리자는 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관변조직만 남고 지금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근영(47) 문화도시연구소 대표는 “서포터스를 꾸리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 스스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관청의 불법행위 단속과 규정 등으로는 슬로시티를 지킬 수 없다. 주민·상인들이 뭉쳐서 공동체적 소비자운동을 하는 등 성숙한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슬로시티의 ‘슬로’가 친환경 에너지 개발, 차량 통행 제한 및 자전거 이용, 무공해 음식, 공동체의식 등 한 도시의 지속가능한 정체성을 중시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주 한옥마을의 현재 상황은 5단계로 나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중에서 3단계 초입 정도로 볼 수 있다. 3단계는 주변 경관이 바뀌고 상업화가 본격 진행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막을 수가 없으나, 전통성을 지키는 마케팅과 사회적 기업 등을 통해 공적 영역을 확대하면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통행 힘들고 곳곳에 쓰레기 몸살
임대료도 뛰어 3.3㎡당 1억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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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재지정 준비도 관 주도
“주민과 소통…공동체 되살려야” ■ 상업·과밀화…한옥마을이 아프다 지난 3일 전주 한옥마을의 한 꼬치집 앞에 손님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 꼬치집과 같은 한옥마을 길거리 음식점들은 7~10㎡(2~3평) 규모로 좁다. 손님이 들어갈 내부 공간이 없다. 주문하려면 손님들이 가게 밖에 줄을 서야 한다. 일부 가게는 주말 하루 매출 1000만원을 올릴 정도로 손님이 몰린다고 한다.
평일인 지난 3일 전주 한옥마을 옆 도로인 기린로 변에 차량이 길게 주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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