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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상인들의 한숨…‘덕수는 그래도 지 가게 아이가’

등록 2015-02-15 15:46수정 2015-02-15 17:32

지난 11일 부산 중구 국제시장의 명소가 된 ‘꽃분이네’를 찾은 방문객들이 가게를 구경하고 있다. 부산/김영동 기자
지난 11일 부산 중구 국제시장의 명소가 된 ‘꽃분이네’를 찾은 방문객들이 가게를 구경하고 있다. 부산/김영동 기자
[뉴스 쏙] 임대료 인상 걱정하는 국제시장 상인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는 자기 방에서 아버지를 그리며 독백을 한다. 덕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가 뭐래도 국제시장에 있는 가게 ‘꽃분이네’를 팔지 않는다.

만약 덕수가 영화 주인공이 아니라 진짜 국제시장 상인이라면 어떨까? 실제로도 그만하면 잘 산 것이다. 임대상인이 대부분인 국제시장에서 자기 소유인 가게에서 임대료 오를 걱정 없이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중구 신창동에 자리잡은 국제시장은 주말마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문화관광명소다. 국제시장 왼쪽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 야시장인 부평깡통야시장이, 아래쪽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물시장인 자갈치시장이 있다. 국제시장 바로 아랫길인 광복로 근처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비프(BIFF) 광장과 용두산공원 등이 있다.

영화 대흥행 덕에 발길 몰리지만
정작 상인들은 울상이다
“사람만 복작복작…매출은 제자리”

지난해 12월 개봉한 뒤 이달까지 누적 관객 1300만명을 넘은 영화 <국제시장>의 영향으로 요즘 국제시장에는 평소보다 2배가량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국제시장번영회는 “기존 방문객 수는 평일에 2만~3만명, 주말에 4만~5만명 수준이었다. 영화의 흥행으로 최근에는 평일에 4만~5만명, 주말에 10만명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추산했다.

방문객이 구름같이 몰리자 국제시장 상인들은 처음엔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가게 매출도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과연 상인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국제시장 12개동에서 각 동에서 1명씩 상인 12명에게 물어봤다. 국제시장은 A·B동 2열로 되어 있고 각 열 2층 6개동씩 모두 12개동이다.

■ 방문객만 많고 매출은 제자리 “매출 이야기는 마 꺼내지도 마이소. 지난달 첫째 주에는 옷을 한 벌도 못 팔았어예. 사람들만 복작복작대니 실데없이 송신스럽기(정신없기)만 하지예. 내사(내가) 20살부터 장사를 시작한 뒤 지금처럼 힘든 적은 처음이라예.”

국제시장에서 41년째 옷가게(50㎡가량)를 운영하고 있는 강아무개(61)씨의 하소연이다. 강씨처럼 상당수 국제시장 상인들은 “영화의 흥행 등으로 방문객 수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매출은 그대로”라고 한다.

국제시장 상가건물 2층 한쪽에 세들어 한복 장사를 하고 있는 최아무개(55)씨는 “1층 가게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건을 구경하려고 들어오기라도 하지만 2층 가게에는 올라오지도 않는다. 2층에도 포목, 이불, 한복, 남성복 파는 가게들이 많은데 매출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국제시장 상점 현황 및 임대 상인들의 목소리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음식가게(59㎡)를 하는 박아무개(28)씨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박씨는 “지난해 2월 보증금 5000만원 달세 350만원에 문을 열었는데 다달이 적자와 흑자가 엇갈려 겨우 가게 유지만 하고 있다. 영화 덕분인지 지난달 딱 한달 동안 주말 매출이 30%가량 오르긴 했는데, 이달 들어 다시 제자리다. 가게를 옮겨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인 국제시장뿐만 아니라 백화점 매출도 <국제시장> 흥행 특수와는 거리가 멀다. 국제시장 근처에 있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자료를 보면, <국제시장>이 개봉한 지난해 12월부터 흥행이 한창이던 지난달까지 광복점을 찾은 방문객은 23만8000여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만여명(21만8000여명)이 늘었고, 매출 실적은 3%가량 올랐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년 전 같은 기간에 광복점을 찾은 방문객 수(20만5000여명)와 매출 증대(4%)와 비교해보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 상가 임대료 인상 조짐에 울상 매출은 제자리걸음이지만, 국제시장 가게 권리금과 월세 등 임대료는 올랐거나 오를 조짐이다. 발원지는 <국제시장> 촬영지로 사람들이 몰리는 ‘꽃분이네’ 근처 가게들이다. ‘꽃분이네’ 상인은 중재에 나선 부산시와 언론의 관심으로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가게 주인과 수차례 진통을 겪은 끝에 최근 합의했다.

임대료 인상은 국제시장 상인들에게 직격탄이다. 국제시장 상점 1489곳 가운데 임대상점이 약 70%(1029곳)이기 때문이다. 팥죽 등을 팔고 있는 황아무개(59)씨는 “8㎡가량의 작은 가게인데도 권리금 2000만원에 월세를 200만원이나 줘야 한다. 사람들이 몰리니 가게 주인이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한다”고 걱정했다.

상점 1489곳중 70%가 임차인데
주인들 “장사 잘되니 임대료 올리자”
목돈 없는 상인들은 쫓겨날 판

문구점(16㎡가량) 사장 김아무개(45)씨는 “가게 주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하면 장사를 접고 막노동이라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10년 가게 월세가 70만원 수준이었는데, 2013년 150만원으로 올랐다. 계약기간이 1년가량 남아 있어 (가게 주인한테서) 아직 말이 없는데,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다고 들었다. 내년이 걱정이다”라고 푸념했다.

‘사람들만 몰릴 뿐 장사는 안된다’는 세든 상인들의 말과 달리 가게 주인들은 ‘상식적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이 2배로 늘었는데 장사가 안될 리가 없다’는 태도다. 가게 주인 이아무개(58)씨는 “주말에 10만명이 찾아오면 적어도 1000명은 물건을 살 거 아니냐. 파는 물건에 따라 일부 가게는 장사가 안될지는 몰라도 국제시장 상가의 전체 매출은 올랐을 것이다. 나도 1~2년 뒤에는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제시장 근처 부동산중개업자들은 4~5년새 가게 임대료가 배로 올라 영세상인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 천아무개(62)씨는 “현재 국제시장 가게 임대료는 가게 규모 10㎡ 기준으로 권리금 500만~2000만원, 보증금 1000만~2000만원, 월세 100만~200만원 수준이다. 2010년에 견주면 거의 갑절가량 올랐다. 국제시장 건물들은 지은 지 30여년 된 낡은 건물들인데, 임대료가 오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일부 가게 주인들은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사 김아무개씨는 “국제시장 근처의 광복로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려 사람들이 몰렸다. 여기에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으로 사람들이 국제시장을 많이 찾았다. 가게 주인들은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주인들은 임대 계약이 끝나는 가게부터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다. 목돈 없는 애꿎은 서민 상인들만 쫓겨날 판”이라며 혀를 찼다.

관광활성화 정책이 부작용 불러
“상인들 스스로 해결하기엔 역부족
부산시가 적극적 중재에 나서야”

■ ‘관광 활성화’ 앞장선 부산시가 나서라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꽃분이네’ 임대료 인상 문제 때는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던 부산시가 다른 가게 임대료 인상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한발 물러섰다. 정진학 부산시 경제통상국장은 “국제시장 번영회를 통해 ‘단순히 방문객이 많다고 해서 임대료를 올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 간 임대 계약이기 때문에 시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국제시장을 연구해온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부산시는 ‘관광 활성화’에만 정책 초점을 두고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이득이 있을 것처럼 포장했다.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국제시장 가게 임대료 인상으로 드러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을’ 처지인 상인들이 ‘갑’인 가게 주인들과 협의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부산시가 전통시장 살리기 차원에서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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