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들에게 ‘갑질’하는 공모전

취업준비생 울리는 공모전. 다음 아고라

강원도 대기업 자회사 호텔
“적합 작품 없다” 수상작 안뽑아
‘저작권, 회사 귀속’ 명시도 논란
참가자 “홍보만 하고 뒤통수” 항의

대기업 자회사인 한 호텔이 광고 공모전을 진행한 뒤 ‘적합한 출품작이 없다’며 수상작을 아예 선정하지 않아 출품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강원도에 있는 ㄱ호텔은 지난달 30일까지 광고 공모전을 진행했다. 대상 500만원, 금상 100만원, 은상(두 팀) 각 50만원 등 상금도 내걸었다. 하지만 지난 19일 “브랜드 방향성에 적합한 작품이 없다”며 단 한 작품도 수상작으로 뽑지 않았다. 이 공모에는 140여개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전에 작품을 낸 ㄱ씨는 24일 <한겨레>에 “이제껏 한 명도 수상작을 내지 않은 공모전은 보지 못했다. 대부분 적게는 며칠에서 많게는 한 달 이상 작품을 준비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애초 호텔 홍보만을 위해 공모전을 진행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ㄱ씨는 “주최 쪽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다양한 인쇄 시안을 얻고, 공모전을 통해 호텔을 알리는 홍보 효과도 냈다. 공모전이 기업의 홍보비 절감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올라온 ‘학생들과 취업준비생을 울리는 어이없는 공모전(부제: 수상작이 없는 공모전)’이란 글에도 “대상작이 없었던 공모전은 있었지만 단 한 명도 입상하지 못한 것은 처음” “취업준비생이나 학생들이 이력서 한 줄 채우기 위해 땀 흘려 고생했던 시간들이 대가 없이 허무하게 묻혔다” “제출된 작품 가운데 괜찮은 건 지들이 했다고 하면서 출시하겠네” “요즘 자주 벌어지는 아이디어 도둑질 행위” 등 비판이 빗발쳤다.

주최 쪽이 내건 저작권 관련 조건도 논란이 일고 있다. ㄱ호텔은 ‘입상 응모작의 저작권은 주최 쪽이 소유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ㄱ씨는 “약간의 상금을 걸고 수상자 저작권은 주최 쪽에 귀속된다는 조항을 달고 있다. 명백한 잘못이지만 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은 ‘을’의 입장이어서 항의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4월 마련한 공모전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을 보면 ‘입상한 응모작에 대해 저작권의 전체나 일부를 양수한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해 고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정책과 관계자는 “공모전의 주최가 입상작에 대한 저작권을 취득하려고 할 때는 입상작 발표 뒤 해당 응모자와 별도 합의를 해야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호텔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가이드라인이 일선 기업 등엔 전혀 배포가 안 됐다. 입상작은 상금으로 보상을 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출품작 모두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해 입상작을 선정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박수혁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