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경찰 할 일이 그렇게 없습니까?

등록 2015-03-16 21:56

현장에서
처음에는 기삿거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변홍철(46)씨가 지난달 16일 대구에서 뿌린 전단은 고작 스무장이었다. 그것도 퍼포먼스 차원에서 뿌린 뒤 ‘인증샷’만 찍고 바로 전단을 주워 돌아갔다. 당시에는 이미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이 수천장, 수만장 뿌려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경찰이 수사에 나설 리가 없으니, 기삿거리도 되지 않을 거라며 그냥 넘겼다.

예상을 뒤엎고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경찰관들이 변씨의 집과 아내의 출판사 사무실을 찾아와 헤집고 다니더니, 급기야 압수수색영장까지 발부받아 12일 변씨의 집과 아내의 출판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가져간 변씨의 휴대전화는 아직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인권운동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16일 대구 수성경찰서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과잉수사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경찰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17일 경찰이 변씨에게 첫 출석요구서를 보냈을 때 적혀 있던 혐의는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었다. 지난달 23일 보낸 두번째 출석요구서에 적힌 혐의는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제309조)이었다. 12일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는 ‘명예훼손’(형법 제307조)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혐의가 바뀌었다.

애초부터 청와대 눈치를 보며 시작한 무리한 수사였다. 고작 전단 스무장을 뿌렸다가 주워갔는데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라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었다. 한 장짜리 전단은 법원에서 출판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려 했던 것도 말이 안 됐다. 결국 마지막에 경찰이 찾아낸 혐의가 명예훼손. 하지만 명예훼손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수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지랖 넓은 경찰’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전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일우 기자
김일우 기자
경찰이 가진 권력은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가 부여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위임한 것이다. 권력자 눈치나 보면서 수사력을 낭비하라고 경찰에게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화가 나면 대통령 욕도 좀 하고 그럴 수 있는 거다. 경찰이 노 전 대통령과 윤 검사의 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