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부산 양서협동조합이 운영했던 협동서점. 서점 앞에 서 있는 이는 조합원 박철수씨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인 부마항쟁의 밑거름 구실을 했던 부산 ‘양서협동조합’이 1979년 11월19일 강제해산되고 36년 만에 다시 세워진다.
‘부산 양서협동조합 재건준비위원회’는 23일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와이엠시에이(YMCA) 세미나실에서 발기인대회를 연다. 발기위원에는 1978년 조합 창립 당시 중심인물이었던 김형기 목사와 최준영씨 등 45명이 참여한다. 창립총회는 7월4일 열린다.
양서협동조합은 70년대 후반 부산 민주운동의 교육장이었다. 당시 부산 민주사회운동 세력의 집결지 구실을 하던 중구 보수동 중부교회의 김형기 목사 제안에 따라 최준영씨 등 시민들은 조합 정관을 만들고, 78년 4월2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흥록 변호사를 초대 이사장으로, 김희욱씨를 전무로 선임했다. 이어 같은 해 4월22일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 협동서점을 열었다.
조합 설립 목적은 책을 읽고 토론·교육을 통해 민주의식을 높이는 것이었다. 조합은 정치·종교적 중립과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운영원칙 아래 출자금 1000원과 가입금 1000원을 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다. 출자액에 상관없이 조합원 1명의 투표권은 1표로 정했다.
조합은 책을 매개체로 노동·농촌문제 등 당시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과 교육을 진행했다. 입소문을 타고 조합에 시민들이 모였다. 창립 당시 141명이던 조합원은 79년 10월 572명으로 불어났다.
최준영씨는 “사회문제를 두고 사람들은 관심사에 따라 작은 모임으로 나뉘어 다양한 토론을 했다. 조합은 그 시절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조합을 항상 감시했다”고 말했다.
부마항쟁 직후인 79년 11월19일 군사정권은 이들을 부마항쟁 배후로 몰아 강제해산했다. 조합원 300여명이 연행돼 조사를 받았지만, 조합원들은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다. 결국 81년 9~10월 19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돼 불법 감금·고문을 받았던 군사정권의 대표적 용공사건인 ‘부림사건’으로 이어졌다.
김호진 재건준비위 간사는 “부산을 지식·정보·교육·문화 분야에서 협동·상생·교육·문화의 도시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려고 책을 매개로 한 조합을 다시 만들었다. 두레의 현대적 모습인 협동조합을 통해 협동·상생 문화를 사회에 퍼뜨려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민주적 토론과 상향식 의사결정 방법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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