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주한미군기지 이전공사 현장에서 ‘갑의 횡포’를 비난하며 분신을 시도한 대형 건설사 하청업체 사장의 유서에서 ‘(원청업체 임직원들에게) 접대 1억·상납 1억원’이라는 글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평택경찰서는 “지난 8일 분신한 건설사 하청업체 사장 한아무개(62)씨가 원청업체인 ㅅ사의 각종 불공정행위와 접대·상납 등의 주장이 담긴 내용이 유서가 발견됨에 따라 진위를 조사중”이라고 11일 밝혔다.
한씨는 A4용지 두 쪽 분량의 자필로 쓴 글에서 “갑의 횡포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계약금과 실행금이 현실적으로 차이가 너무 크다. (이번 공사로)부채가 20억원에 이르게 됐다. 철저히 수사하여 찾아달라. 죽음으로 부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공사지출액 84억원. 수금 64억5천만원. 차액 20억원을 찾아달라”고 쓴 뒤, 지출항목에서 “○○통장 76억원, 부가세 7억원, 접대 1억원. 상납 1억원” 등이라고 기록했다.
한씨는 또한, “전년 추석 때 손실보전금 15억원을 요구했지만 갑의 협박과 압력으로 6억5천만원에 합의했다. 금년 구정에 연장계약 및 추가 공사비로 15억6천만원을 청구했지만 갑의 압력과 협박으로 7억5천만원에 합의했다”라고도 썼다. 손실보전금은 하청업체가 시공 도중 발생한 손실에 대해 원청업체로부터 계약금 외에 추가로 받는 보전금이다. 그는 “더이상 간접 살인하지 말라. 본인 하나로 끝나게 하라. 억울하다. 더 살고 싶다”고 적었다.
한씨는 유서에서 자신에게 압력을 행사한 원청업체 관계자의 실명 등이 적혀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압력이나 횡포를 당했는지 등에 대해선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이에 한씨가 ‘접대와 상납’이 누구를 상대로 한 것을 의미하는 건지, 원청업체로부터 어떤 압박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 중이다. 경찰 한 관계자는 “분신사건의 배경에 어떤 불공정 관계가 있었는지 밝히기 위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그러나 유서내용 중 아직 사실로 확인된 부분이 없어 내용을 일일이 공개할 수는 없다. 한씨 주장 가운데 상당부분은 민사적인 분야라 어느 선까지 경찰이 개입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원청업체인 ㅅ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자체적 상황파악으로는 한씨의 주장이 확인된 게 없다.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지켜본 뒤 상황에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지난 8일 오전 10시5분께 평택시 팽성읍 동창리 미군부대(K-6) 내 차량정비시설 건설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였다. 이 사고로 한씨와 불을 끄려던 ㅅ사 직원 조아무개(48)씨가 몸에 심한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한씨는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경찰은 최근 원청회사가 ‘한씨 쪽에 공사기간을 맞추지 못할 것 같으니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공사 관계자 진술을 확보하고 조사 중이다. 차량정비시설 건설공사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5월 발주돼 올해 10월 준공 예정이다. 평택/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