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명예교수
[짬] 삼국시대 식물 연구서 낸 김규원 명예교수
기록된 107가지 식물 살펴봐
길상초·혁 등 실체 없는 식물
가상식물 정하고 후학들 몫으로
“마당에 핀 꽃 예뻐 궁금해 시작
건강 허락하면 고려시대도 조사” 김 교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대동운부군옥> 등 삼국시대를 다룬 역사서적 30여권에 남겨진 문헌자료를 분석해 여기에 등장하는 원예식물, 곡물류, 특용식물, 염색 소재 식물 등 107가지를 설명하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시대상을 살펴봤다. “현재 한반도에는 4천여종의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삼국시대엔 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30종류의 문헌에 등장하는 식물은 107가지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쓰임새가 많은 식물들만 문헌에 기록됐을 겁니다.” 김 교수가 삼국시대 문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몇 꽃 종류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발견됐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편에는 ‘신라 승려 조신이 콩잎이나 명아주국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표현은 지팡이를 만들 때 쓰이는 명아주를 당시 사람들은 먹을거리로 삼았음을 알수 있다. 또 ‘가야 수로왕 7년(48년)에 아유타국 공주에게 난초로 만든 음료와 혜로 만든 좋은 술을 대접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김 교수는 “난초의 일종인 석곡이 약용으로 쓰이는데, 이것으로 즙을 내 귀한 손님에게 대접했을 것으로 해석되지만, ‘혜’라는 식물은 난초의 일종으로만 추정될 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요즘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미가 삼국시대 문헌에도 나온다. 하지만 장미는 서기 1000년쯤에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모습이 비슷한 해당화를 장미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콩으로 만든 간장과 된장은 삼국시대 부인을 맞을 때 쌀, 술, 꿀, 기름 등과 함께 예물로 보낼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 김 교수는 삼국시대 문헌에 나오는 길상초, 혁, 동노수, 보현수, 지식수, 청련, 하늘꽃, 꽃비 등은 어떤 식물인지 짐작조차 어려워 ‘가상식물’로 이름 붙여 놓고 실체를 밝히는 일을 후학들의 몫으로 남겨놨다. 김 교수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영남대에서 정년퇴직하고 난 직후부터다. “퇴직 후에 집에서 쉬면서 마음속에 자그마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0년 동안 살아온 아파트 마당에 피는 꽃이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 꽃이 언제부터 저기 있었을까 궁금했고, 알아보고 싶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김 교수는 <삼국유사> 등 관련 책을 통해 문헌 조사에 착수했다. “새벽 3~4시에 눈을 떠서 하루 10시간 이상씩 책을 읽었습니다. 옥편을 찾아 한문을 해석하고, 당시 문헌에 소개된 식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찾아냈습니다.” 그는 “교수로 재직할 당시엔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생겨났는지 지금도 알수 없어요”라고 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면서 30년 동안 꽃의 품질 향상, 생산량 증가, 주로 이런 분야에서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년 후에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꽃의 역사, 문화 같은 인문적인 분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꽃산업의 발전을 위해 젊은 학도들이 꽃의 인문학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 교수는 고려시대 문헌 조사에 나설 생각이다. “고려시대 문헌을 조사해보면 삼국시대 등장했던 식물들의 변화 추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상식물로 분류해놨던 꽃이 과연 상상 속 식물인지 여부도 밝혀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문헌이 너무 방대해 건강이 걱정입니다.” 대구/글·사진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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