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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목타는 ‘한숨 들녘’…“정부는 도대체 뭐하는지”

등록 2015-10-11 20:00

서울·경기·충남 올해 강수량
평년의 절반에도 못미쳐
댐·저수지마다 바닥 드러내
제한급수에 농업용수 공급 비상

벼는 쭉정이…콩은 속이 텅텅…
배추·무 등 ‘김장대란’ 우려
“내년 봄에 더 큰 위기” 분석도

당정 내일 정책협의회 열지만
“그동안 뭐하고…” 뒷북대처 지적
“정부 조직안에 상설기구 마련을”
지난 8일 오후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보령호에서 물에 잠겼던 마을의 옛 도로 위로 자전거를 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계속된 가뭄으로 보령댐은 중앙 부분을 제외하고는 보령호 전체가 바닥을 드러냈다. 총저수량 1억1700만t인 보령댐은 1998년 준공돼 충남 서북부 지역에 수돗물과 공업용수 등을 공급하고 있다. 
 보령/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8일 오후 충남 보령시 미산면 용수리 보령호에서 물에 잠겼던 마을의 옛 도로 위로 자전거를 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계속된 가뭄으로 보령댐은 중앙 부분을 제외하고는 보령호 전체가 바닥을 드러냈다. 총저수량 1억1700만t인 보령댐은 1998년 준공돼 충남 서북부 지역에 수돗물과 공업용수 등을 공급하고 있다. 보령/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벼 품질이 나빠 타작하다 말았슈. 정부가 사들여 사료로 쓰는 길밖에는 대책이 없어유.”

11일 오전 오랜 가뭄에 시달리는 충남 서산 천수만에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하지만 이종섭(68·부석면 취평2리) 천수만경작자연합회 대표는 “가뭄으로 쌀 한 톨도 못 건지는 농민들도 있는데 추수기에 비가 내리니 하늘이 야속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동섭(68) 갈마2리 이장도 “황금들판 같지만 태반이 쭉정이”라고 거들었다. 지금 충남지역 황금들녘은 ‘한숨들녘’으로 바뀌고 있다.

수도권과 강원·충청 등 중부권에 ‘가을 가뭄띠’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충남 서해안 8개 시·군은 사상 초유의 제한급수가 이어지고 있으며, 강원·충북지역 고지대는 식수원인 계곡물이 말라 급수차 올 때만 기다리는 주민이 늘고 있다. 지금보다 내년 봄이 더 큰 위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 얼마나 가물길래? 100년 만의 최악 가뭄이라는 지역이 늘고 있다. 충남 서산·홍성 등 서부지역 시·군 8곳은 지난 8일부터 물 공급을 20% 줄이는 제한급수를 시작했다. 지금껏 물걱정 없이 살던 곳이다.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없다. 지금 보령댐 저수율은 22.1%다. 수위는 59m, 수량은 2700만t이다. 하루 평균 19만3500t씩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어 용수공급 중단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보령댐 관계자는 “추가 유입이 안 되면 12월 말께 수위가 50m 아래로 떨어져 정상적인 물 공급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1일 기준 전국 주요 취수원 댐의 저수율을 보면, 소양강댐이 44.7%, 횡성댐 29.5%, 충주댐 41.2%, 안동댐 33.3%, 용담댐 29.6%, 주암댐 36.4%, 대청댐 36.9%다. 보령·주암·용담·횡성댐은 지금 역대 최저 수위이고, 나머지도 낮은 수위 역대 2~3위를 기록할 정도로 수위가 바닥이다.

농업용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인천·경기지역 저수지 117곳의 저수율은 44%다. 특히 인천 강화지역 저수지 17곳의 평균 저수율은 10%이며, 고려·난정저수지 등 6곳은 아예 저수율이 0%로 마른논처럼 변했다.

물이 없으니 농사도 엉망이다. 멀리서 보면 황금들녘이지만 가까이 가 벼를 훑어 손으로 비비면 ‘훅’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쭉정이 벼가 늘고 있다. 갯벌 간척지 충남 서산·태안 A(간월호)·B(부남호)지구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강우량이 줄어들면서 담수 순환이 안 돼 수질이 악화되고 소금기가 늘면서 발생하는 ‘염해’도 나타나고 있다.

8일 충남도가 분석한 이들 A·B지구와 대호지구의 피해 면적은 4999㏊이며 피해율은 20~70%다. 전체 면적(9988㏊)의 절반 넘게 피해가 났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11일 “긴급예산 231억5천만원을 투입해 관정개발, 누수저감, 양수장 개·보수 등 7개 사업을 벌이는 등 가뭄 극복에 도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 등 콩 주산지는 알맹이는 없고 꼬투리만 달린 속 빈 콩이 수두룩하고, 생육기에 접어든 배추·무 등 김장 채소가 성장을 멈춰 벌써부터 ‘김장대란’이 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먹을 물도 말라 가고 있다. 상수도 대신 계곡물을 수원으로 활용하는 충북·강원지역 산간 마을은 심각하다. 강원소방본부는 지난달 232차례 988t의 물을 급수했다. 송근배 춘천 서면 당림1리 이장은 “올해 지하수 관정 8개를 팠지만 허사였다. 급수차에 의존하고 있지만 먹는 물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가뭄이 길어지면서 농업·공업용수를 식수로 공급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전북 익산시는 지난달 16일부터 25일까지 8일 동안(휴일 제외) 4급수인 금강 물을 정수한 뒤 식수로 공급했다. 전북녹색연합은 “오염된 금강 물을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식수로 시험 삼아 공급한 조처에 경악한다. 관련자를 징계하라”고 촉구했다.

■ 왜 가을에 가뭄일까? 지난 5일까지 올해 누적 강수량을 보면, 서울·경기가 517.7㎜로 예년 평균 1224.1㎜의 42%, 충남은 572.4㎜로 평년 1157.9㎜의 49%로 평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으며, 강원·충북·전북 등은 평년의 52~58% 수준이었다. 그나마 전남·경남 등은 80% 선이었으며, 전국은 754.3㎜로 평년 1196.6㎜의 62%를 기록했다.

기상전문가들은 가뭄의 원인으로 ‘엘니뇨’를 첫손에 꼽는다. 스페인어로 ‘남자아이’라는 뜻의 엘니뇨는 남미 해안~동태평양 적도 부근의 해수면 온도가 예년에 견줘 0.5도 높은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이다. 강철성 충북대 지리교육과 교수(기후학)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교차하는 일정한 시스템이 있는데 엘니뇨 등 이상기후 현상 때문에 이 시스템이 무너졌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발달하지 못하면서 장마전선이 이뤄지지 않았고, 태풍도 일본·필리핀 등으로 비껴갔다”고 말했다.

지금보다 내년 봄이 진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상청 기후예측과는 지난달 발표한 3개월 기후 전망에서 “현재 강한 엘니뇨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발달해 강도의 엘니뇨가 유지될 것”이라고 봤다. 강철성 교수는 “내년 봄 모내기 때가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물관리가 100년 대계라는 마음으로 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 정부와 새누리당은 13일 가뭄 정책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기상청도 이날 학계 전문가 등과 가뭄 대처 워크숍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늦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상단 부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이번 가뭄이 지난 봄가뭄의 연장선이듯이 가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정부는 가뭄 앞에 사실상 한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 조직 안에 가뭄대책기구를 상설화해야 한다는 구체적 제안도 나온다. 정상만 한국방재학회장(공주대 토목환경공학 교수)은 “국민안전처 아래 미국의 가뭄경감센터 같은 성격의 ‘국가가뭄정보센터’를 설치하고, 가뭄 예방·대비·대응·수습 체계를 일원화한 뒤 지방자치단체, 국민 등과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8일 금강 백제보 물을 보령댐으로 끌어오는 금강-보령댐 도수관로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국비 625억원을 들여 21㎞ 구간에 두께 1100㎜ 관로를 설치해 금강 물을 보령댐에 유입시키는 사업으로 내년 2월 완공되면 하루 11만5000t의 물이 공급된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정상만 교수는 “4대강 16개 보 등에 저장된 7억여t의 물을 끌어오는 것으로 급한 물량 확보는 되겠지만 수질 등 장기적으로는 검토·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자치단체도 새 물길을 찾는 데 애를 쓰고 있다. 강원도는 해마다 물 부족에 허덕이는 강릉 안반데기 등 고랭지에 양수장 12곳, 관정 134곳, 저류조 40곳을 설치하기로 했다.

물절약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충북 청주시는 빗물 1만t을 재활용하는 것 등을 뼈대로 ‘물 재이용 관리 계획’을 내놨다. 한무영 서울대 교수는 “빗물 저류조를 설치하면 홍수를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한꺼번에 12리터 정도의 물을 쓰는 변기를 작게 바꾸는 등 생활 속 절수 운동과, 공급자 중심의 물관리 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바꾸는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홍용덕 박임근 송인걸 박수혁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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