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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살에 ‘식물학’과 재회…광릉요강꽃에 세번 큰절 올렸지요”

등록 2015-11-05 18:51수정 2015-11-05 22:25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파주 새 사옥서 22일까지 화서전 ‘꽂’
“이사를 하고 보니 사방이 공사판이어서 꽃을 통해 척박한 땅에 따사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궁리출판 이갑수(56) 대표가 4일, 두달 전 새로 둥지를 튼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2단지의 새 사옥 외이재(外而齋)에서 화서전을 열게 된 이유다.

내년 초까지 120여개 출판사가 입주하게 될 출판도시 2단지는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궁리의 사옥 1층 전시장 한켠에는 외이재를 1·2·3층 어디서든 바깥과 연결되도록 짓는 과정을 기록한 상량전도 함께 열고 있다.

‘꽃을 주제로 한 인문적 퍼포먼스’란 부제로 오는 2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이 대표가 지난 4년 동안 전국의 산을 누비며 만난 1000여종의 초목 가운데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26점의 이야기를 추렸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꽃에 얽힌 사연과 추억들을 한지에 붓글씨로 써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전시회 제목이 ‘꽃’이 아니라 ‘꽂’이다. ‘꽃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나 부족한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사실 그는 서울대 식물학과 출신이다. 하지만 쉰살에야 옛 서울 사옥 근처에 있던 인왕산을 오르면서 꽃·나무와 재회했다. “대학 땐 전공과 불화를 겪었던 터라 내내 무관심하게 살았어요. 산에 다니면서도 소나무밖에는 아는 게 없었어요. 나무나 꽃이, 누군가 나에게 보낸 신호일 수도 있는데 까막눈이었던 거죠. 자연의 의미, 세상의 의미를 찾기 위해 꽃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후배인 현진오 박사의 동북아식물연구소와 식물다양성교육센터의 문을 두드려 ‘미친 듯이 쏘다니며’ 꽃산행을 했다. 처음엔 꽃 자체에 대해 공부하다 점차 꽃이 처한 환경과 자연 등으로 확장된 생각을 글로 엮어 지난해 <꽃산행 꽃시>란 책도 펴냈다.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이라는 그는 “세파에 시달린 중년이 되어서야 식물을 재발견한 거죠. 지금은 꽃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통로이고, 자연은 꽃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 그는 깊은 산에서 귀한 꽃을 만나면 엄숙한 마음으로 삼배의 예를 갖춘다. “지난해 5월 경기도 포천 백운산 골짜기에서 야생에서 보기를 소원했던 멸종위기종 광릉요강꽃을 발견하고는 부처님을 만난 듯 세번 큰절을 올렸지요.”

그는 미수(88살)가 된 어머니를 소녀 시절로 이끌어주는 산딸기처럼, 사연 있는 식물에 더 애착을 느낀다.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는 성균관대 명륜당 앞의 500년 된 은행나무도 그렇다. “작은 씨앗이 노거수가 되어 가지 끝으로 공중을 더듬으며 하늘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내던진 모습을 보며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도 스스로 거스르는 법이 없는’ 경지를 느낍니다.”

그는 산에 다니면서 삶에 여유가 생기고 글쓰기의 에너지도 되찾았다. 일찍이 1990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던 필력을 살려 2010년 <인왕산일기>(2010년)와 <신인왕제색도>를 동시에 펴냈다. ‘몸을 구부려 꽃을 자세히 본다’는 뜻으로 필명을 굴기(屈己)로 적은 것도 이 무렵이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예쁘다란 말이 있듯이 작은 꽃도 들여다보면 우주의 비밀을 엿볼 수 있어요. 한국의 자생식물이 4200종이라고 하는데 이들을 모두 만나 하나하나 인연을 엮어 글을 써보는 게 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파주/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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