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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비’ 휩쓴 울릉도, 그후 한달

등록 2005-10-14 19:47수정 2005-10-14 19:47

오징어 철을 맞은 요즈음 울릉도 도동항 입구는 가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건조대에 늘어놓은 오징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오징어 철을 맞은 요즈음 울릉도 도동항 입구는 가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건조대에 늘어놓은 오징어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생채기 거의 아물고 오징어에 기름 잘잘 흘러요”

한나절이면 생오징어도 꾸둑꾸둑 마를 만큼 가을 햇볕이 강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12일 오후 울릉군 남양면 남서1리 자신의 집터에서 새집을 짓기 위해 일꾼들과 함께 측량을 하던 울릉도 토박이 이재만(71)씨의 얼굴엔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그의 집은 지난달 5일 태풍 나비가 물고 온 엄청난 비로 하룻밤 새에 흔적도 없이 쓸려 갔다. 급히 집을 나와 피하지 않았더라면 세찬 물살은 이씨 내외도 삼켜버렸을 터였다. 이날 옆집 살던 이웃은 대피 도중 마을 젊은이의 손을 놓쳐 급기야 세상을 떠났다. 오창근 울릉군수는 그날의 피해를 “나비가 벌이 되어 울릉도를 쏘았다”고 표현했다.

나비가 휩쓸고 간 지 한달 남짓 지났지만, 울릉도는 태풍에 할퀸 상채기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가옥 수십채가 한꺼번에 쓸려간 마을, 문을 닫은 학교... 어떤 곳은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바다를 메워 ‘매립지’가 생겨났다. 그 매립지로 임시도로가 만들어져 차들이 지나갔다.

길 한 쪽에선 포크레인이 형편없이 구겨져 서 있기도 했다. 2년 전 매미 때문에 유실된 도로에서 작업을 하던 중 나비로 매몰된 것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이렇게 운이 없어 노면(놓으면) 아예 살 의지가 없어지는 기라.” 울릉도에서 유람선 사업을 하고 있는 양병환씨는 “2003년 매미, 2004년 송다에 이어 올해마저 태풍에 두드려 맞자 솔직히 섬을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두 9201명이 살고 있는 이 섬을 강타한 태풍 나비는 796명의 이재민을 남겨놓고 떠났다. 총인구의 8%에 해당하는 숫자다. 재산피해만도 200억원에 이른다. 울릉군의 한해 예산 600억원의 1/3에 해당한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려면 면 단위 1곳을 기준으로 인구 1600명이 거주해야 하고 재산 피해액은 600억원(사유재산은 120억원 이상)이 넘어야 한다. 30년 전에 비해 주민이 1/2로 줄어들 만큼 현저하게 인구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울릉도에선 2개 면을 합쳐도 1500명이 되지 않는다. 피해재산도 시가가 얼마 안되는 농가주택이 대부분이라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복구비는 내륙에 비해 2배 이상 들어간다. 운송비 때문에 모든 건축자재와 장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태풍만이 아니다. 태풍으로 울릉도가 심한 타격을 입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태풍 이전에 하루 500명씩 오던 독도 방문객도 요즘엔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관광수입이 형편없이 낮아진 것을 놓고 울릉도 사람들은 ‘태풍을 두번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실제로 유람선과 승합차를 타고 한바퀴 둘러본 울릉도는 여전히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보라색 해국과 진노랑 털머위가 바위산 곳곳을 수놓았고, 수많은 전설이 서린 각양각색의 바위산이 에머랄드빛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관광객들을 맞았다.

울릉군 문화관광과 김철환 계장은 “다행히 이번 태풍은 시가지를 덮치지 않아 민박·호텔·음식점도 정상 영업 중이고, 수해로 유실된 도로도 응급 복구가 이미 끝나 관광엔 별 어려움이 없다”며 “관광객들이 태풍이 덮친 마을에서 노는 것이 미안스러워 오지 않는 게 더 큰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외지에서 온 기자에게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꼭 이렇게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울릉도 꼭 가 보이소. 태풍 피해 좀 입었지만 경치는 장관입디다. 글찮아도 요즘은 오징어 살에 기름이 잘잘 흐르는 때이잖소!”

울릉도/글·사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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