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전체 주민투표가 지난 12일 끝났다. 1만274명(91.7%)이 반대표를 던졌다. 영덕 전체 투표권자 3만4432명(9월 기준) 가운데 1만1201명이 투표했다. 투표율은 32.5%다.
주민투표법상 효력의 기준은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 투표, 유효투표수 과반수 득표’다. 주민 277명만 더 투표소에 나와줬더라면, 전체 투표권자는 1만1478명으로 3분의 1을 넘었을 것이다.
주민투표 뒤 환경단체들은 “주민투표율 60.3%, 반대율 91.7%”이라고 주장한다. 주민투표를 위해 만든 1만8581명의 투표인명부를 기준으로 하면 투표율이 ‘60.3%’라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전체 투표권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투표인명부를 기준 삼아 투표율이 60.3%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투표율 계산은 상식 밖이다. 중앙정부와 원전 운영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이번 주민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투표날 날씨마저 궂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어려웠던 것과 상식을 넘어서는 주장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처음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주민투표를 법적 근거와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민간이 주도하는 주민투표이고 국가사무인 원전 건설은 지방자치의 영역이 아니라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란 이유를 댔다. 하지만 이들은 내심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주민투표라고 애서 무시하려해도 투표율이 주민투표법상 효력 기준을 넘어버리면 원전 건설 명분이 약해진다. 정부와 한수원 등이 압박과 회유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을 투표소에 가지 못하도록 했던 이유다.
환경단체들은 이에 맞서 주민들에게 필요성과 믿음, 희망을 심어주며 투표소에 나가도록 해야 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해석할 때 ‘3분의 1 이상의 투표율’은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내기 위해 필요한 기준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영덕 주민투표 현장 취재를 하면서 3분의 1 이상의 투표율을 내는 것은 가능했다고 봤다. 무엇보다 정부가 하는 일에 늘 고분고분했던 영덕 주민이 이번에는 원전 반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덕은 그동안 여러 차례 여론조사에서 원전 유치 반대 여론(60%)이 찬성 여론(30%)보다 갑절이나 높게 나왔다. 전체 투표권자를 기준으로 하면 2만659명이 원전 유치에 반대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주민투표에서 나온 반대표는 1만274명에 머물렀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13일 ‘주민투표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영덕 주민투표 성공을 외면하고 투표율로 효력 따지는 일부 언론은 각성해야’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아니다. 이 단체는 ‘영덕 주민 여러분의 뜻을 주민투표 결과에 모두 담아내지 못해 주민들께 미안하다’는 보도자료를 냈어야 했어야 했다.
환경운동연합 보도자료 내용처럼 ‘영덕군민들과 투표인 명부부터 일일이 서명을 받아 작성을 하고 한푼 두푼 마음을 모으고 하루 이틀 휴가를 내어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전국의 시민들’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를 지켜가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주민들은 승리했지만,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탄탄하게 묶어내지 못한 환경운동가들은 실패했다고 본다. 실패를 성공이라고 이야기하니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영덕/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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