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제주 산담은 땅에 누운 피라미드…삶과 죽음의 경계”

등록 2016-01-31 18:51

제주문화연구소장 김유정씨
제주문화연구소장 김유정씨
[짬] 제주문화연구소장 김유정씨
겨울철 봉긋봉긋 솟아난 제주의 오름 위에 눈이 쌓인 모습은 한 폭의 수묵화다. 오름 자락 곳곳에 조성된 무덤과 산담(무덤 주변에 울타리로 쌓은 돌담)은 제주의 자연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제주 산담은 육지 무덤에서 볼 수 없는 돌담이다. 김유정(54·미술평론가) 제주문화연구소장은 이런 모습을 “제주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오랜 세월에 걸쳐 제주 들녘을 하나의 거대한 돌조형미술관으로 만들어놓은 대지예술이자, 그 어떤 축조물보다도 대단한 규모로 섬의 뛰어난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환경미술”이라고 예찬했다. 김 소장을 지난 29일 제주도청에서 만났다.

81년 조모 별세 계기로
제주의 무덤 돌담에 관심
그 결실 ‘제주 산담’ 펴내

“산담은 제주 돌문화 백미
생사관 등 문화적 접근 필요
앞으론 제주 비석 문양 연구”

20여년 가까이 제주의 돌문화 가운데에서도 산담과 그 속에 있는 동자석 등을 연구해온 그는 최근 <제주 산담>(서귀포문화원)이라는 책을 펴냈다. 김 소장은 제주 산담을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견줬다. “제주사람들의 영적인 성소인 산담들은 땅거미처럼 제주섬 전체에 흐르듯 누워 있다. 제주는 지상에 누운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를 갖고 있다. 한라산 자체가 거대한 피라미드다.”

“1981년 1월 장손인 나를 유독 아껴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다른 애들처럼 상·장례 일을 거들지 않고 당시 올림푸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장례식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밭일을 가면 산담에 앉아 점심을 먹고, 일이 끝나면 산담 안에 농기구를 놓아두고 다녔죠. 이렇게 일상의 기억으로 남은 산담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복잡한 일이 있을 때는 한적한 무덤가 산담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상처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무덤은 산담 자체가 묘역이자 무덤 자체에 해당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제주의 무덤들 역시 모두 할머니 무덤이라고 생각하면서 답사를 다녔다. 무덤에서 혼자 코시(고사)를 지낸 뒤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산담은 옛날 방목하던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무덤 주위에 쌓았던 영혼의 울타리였으나, 차차 가문의 기념비가 됐고, 집안의 위세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소장은 산담을 기념비적, 예술적, 공간적 측면에서 분석을 시도하고, 기능과 유형, 구조, 축조 방법, 제주의 장묘문화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산담을 쌓고 석상을 만들었던 돌챙이(석공)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도 실었다. 20여년에 걸친 그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김 소장은 산담을 도토리가 누운 모양인 전방후원형 산담과 직사각형 산담, 등변 사다리꼴 모양 등 3가지 모양으로 분류했다. 초기 산담이 등변 사다리꼴 모양으로 나타날 때는 성을 쌓듯이 그냥 돌을 쌓았으나, 차차 선을 살리게 되면서 곡선미가 돋보이는 오늘날의 산담으로 진화됐다고 한다.

산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집안이 경제력이 없거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기능성보다는 상징적인 경계 표시로 외담산담을 쌓는다. 겹담산담은 소나 말의 발길이 산담을 넘지 못하게 쌓는 돌담으로, 안팎으로 외담을 쌓은 뒤 그 사이를 잡석으로 채워 최소 너비 1~2.8m가 되게 한다.

김 소장은 “산담을 경계로 산 자들의 세계와 죽은 자들의 세계로 구분된다. 밭이나 목장이 산 자들의 생활영역이라면 산담은 어디에 있든, 죽은 자들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산담은 신성한 돌담이며,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경계지대”라고 해석했다.

김 소장의 산담에 대한 해석은 제주 돌문화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산담을 돌문화의 한 축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제주인의 생사관, 장소성, 상징성, 기념비성, 조형성이라는 문화적 개념들로 다가서야 한다. 산담은 제주인의 상·장례의식의 축조물로서 제주인의 문화적 요인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산담은 제주인의 ‘본향’(本鄕) 의식을 반영하며, 전통적인 의례를 세습해주는 공간이자 기념비성을 드러내는 장소 개념이라는 것이다.

“제주 돌문화의 백미는 산담입니다. 동자석, 문인석도 산담에 예속된 것이고, 산담이야말로 제주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김 소장은 산담 연구와 함께 제주 돌문화 연구를 천착해왔다. 제주의 산담에 있는 동자석 연구도 제주도 전통미술의 범주를 찾는 작업을 하다 눈여겨보게 되면서 시작했다. 그동안 제주 내왓당 무신도 10신위를 연구한 <제주의 무신도>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 <제주의 돌문화>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 돌담> 등의 연구서를 펴냈다. 비석에 새겨진 제주의 문양을 연구하겠다는 것이 김 소장의 다음 목표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