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무릎꿇은 진범 이아무개씨. 사진 박임근 기자
“우리들 때문에 할머니 돌아가시고
다른 사람이 교도소에서 징역살아…
그때 처벌 받았으면 이렇지 않을텐데
17년동안 죄책감에 짓눌려 살았다”
다른 사람이 교도소에서 징역살아…
그때 처벌 받았으면 이렇지 않을텐데
17년동안 죄책감에 짓눌려 살았다”
그의 충혈된 눈은 좌우로 흔들렸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두리번거렸다. 양손을 깍지 꼈다가, 무릎에 뒀다가, 팔짱을 끼다가, 주먹을 쥐는 등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표정에서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느껴졌다. 몸짓에는 고뇌가 묻어났다.
<한겨레>는 지난달 23일 부산 수영구의 한 음식점에서 이아무개(48·사진)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라고 털어놨다. (이씨는 인터뷰 6일 뒤인 29일 이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3명을 만나 사죄하고, 30일 숨진 피해자 할머니 묘소를 참배해 용서를 구했다.)
“우리들 때문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 대신 그들이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피해자들한테 용서를 빕니다. 차라리 그때 처벌을 받았으면 이렇게 살진 않았을 것입니다. 17년 동안 죄책감에 짓눌려 살았습니다.” 이씨가 여러 차례 주저하다 꺼낸 첫 말이었다.
그는 범행 당시 슈퍼 안에서 잠자던 유아무개(77·여)씨의 입을 청색 테이프로 막은 사실을 기억했다. 유씨가 움직이지 않자 인공호흡을 하면서 유씨한테 물을 뿌렸다고 했다. 그는 “응급조치를 했는데, 숨이 돌아오는 듯해서 달아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씨는 유씨가 소생한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유씨는 숨졌다. 그는 이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 알게 됐다. 죄책감에 잠도 못 잤다고 했다.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잘 때마다 죽은 피해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교도소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꿨다. 피 터지게 얻어맞는 꿈도 자주 꿨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른 공범과의 연락을 끊고 한동안 술만 마셨다. 취해야만 쪽잠이라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술 때문에 몸은 축났고, 빚은 쌓여갔다. 이씨는 “진실을 마음 속에 감추고 살다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피해자들한테 진심으로 참회하고 싶었다. 피할 수도 없다. 힘들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용기를 냈다”고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씨는 최근 가족한테도 자신이 진범이라고 고백했다. 이씨는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죗값을 치르는 게 맞다고 했다”고 말했다. 자백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는 “왜 자기 자식만 사랑하는가, 내가 잘못되더라도 내가 안고 갈 짐이라고 설득했다”고 했다.
공소시효(2009년 2월)가 끝났기 때문에 자백하는 것인지 묻자 이씨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2000년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이미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은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제대로 처벌을 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을 수도 있었다. 사실 공소시효가 끝난 것도 몰랐다. 단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마음 속에 얹고 살다보니, 죄책감으로 스스로 위축됐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겁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검찰에서 자신들이 진범이라고 자백했는데도, 삼례3인조가 처벌 받은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가 말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진실이 아닌 진실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들이 진실을 밝혀줘야 한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