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통에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온 85살 할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 12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대구 수성구에 살고 있는 박수년(85)씨는 지난 7일 수성구 인재육성장학재단에 남편 ‘김만용’의 이름으로 12억원을 기증했다.
박씨는 “먼저 간 남편 이름으로 늘 사회에 보람되고 뜻있는 일을 하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평생 억척같이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193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슬하에 아들을 하나 두고 있다. 그는 18살 때 김씨와 결혼해 꿈같은 신혼생활에 젖어있던 중 6·25 전쟁이 터져 남편이 전쟁터로 강제소집돼 갔다. 그 후 2년여 동안 소식이 없었고, 박씨가 23살이 되던 해 남편의 사망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순간 앞이 캄캄했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편이 전사한 뒤 박씨는 달랑 옷보따리 하나만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억척같이 돈을 벌어 고향인 경산에 농사 지을 땅을 샀다. 재혼하라는 주변 권유도 물리치고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아왔다. 박씨는 서른살에 대구 수성구 수성동에 집을 하나 장만했고, 이후 지금까지 56년 동안 수성구에 살고 있다. 남편이 전사해 보훈대상자인 그는 40살에 보훈청에서 마련해준 직장에 20년 동안 근무했으며, 퇴직 후에는 대구와 경산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박씨는 “어렸을 때 너무나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다. 남편이 떠나고 60여년 동안 조금씩 모은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 드리고 싶다.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진훈 대구 수성구청장은 “김만용 박수년 부부의 숭고한 삶과 아름다운 용기를 영원히 기억하겠다. 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에 두분 이름을 딴 공간을 마련해 고귀한 뜻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성로 수성인재육성재단 이사장은 “두분 이름을 딴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을 만들어 가난한 학생들이 맘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대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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