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북 청송에서 일어난 ‘청송 농약 소주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사흘째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발행한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과 비슷해 보이지만, 수사를 하기에는 훨씬 더 조건이 나쁜 상황이다.
청송 사건과 상주 사건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고독성 농약(살충제)인 메소밀이 범행에 사용됐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마을회관이다. 마을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가 마을회관에 들어가 냉장고에 있던 소주나 사이다에 메소밀을 넣었다. 두 사건 모두 마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하기 힘든 범행이다.
하지만 수사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두 사건이 완전히 다르다. 상주 사건 때에는 마을 입구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있었다. 그것도 범인으로 지목된 할머니 박아무개(83)씨 집 앞에 설치돼 있었다. 실제 경찰은 사건을 전후해 이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분석해 박씨의 동선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청송 사건은 마을 안에 폐회로텔레비전이 아예 없다. 마을에서 북쪽 1.1㎞ 지점에 과속단속 폐회로텔레비전이, 남쪽 700m 지점에 방범용 폐회로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을 뿐이다. 마을회관 쪽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불가능해 수사에 큰 도움이 못된다.
용의자를 압축하는데도 청송 사건이 훨씬 더 어렵다. 사건이 일어났던 지난 9일 밤 9시40분께 청송군 현동면 눌인3리 마을회관 안에는 모두 13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이장 박아무개(63·사망)씨와 전 이장 허아무개(68·중태)만 메소밀이 들어있는 소주를 마시고 쓰러졌다. 마을회관 안에 있던 사람들 중에 소주를 마시지 않은 사람은 11명이나 된다.
반면 상주 사건 때에는 마을회관 안에 할머니 7명이 있었고 이 가운데 6명이 메소밀이 든 사이다를 마셔 용의자를 특정하기 쉬웠다. 더군다나 사이다를 유일하게 마시지 않은 할머니 박아무개(83)씨가 사건 직후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목격되거나 119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에 찍히기도 했다. 당시 용의자 박씨는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박씨가 일찍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경찰은 빠른 압수수색으로 박씨의 집에서 메소밀이 묻은 박카스병과 옷가지 등을 확보했다.
또 청송 사건은 범행 동기를 추정하기가 어렵다. 상주 사건은 애초부터 마을회관에 ‘싸우지 마세요’라는 쪽지가 붙어있는 등 범행 동기 추정이 쉬웠다. 전날 화투를 치다가 용의자 박씨가 속임수를 써 민아무개(85)씨가 화투패를 던지고 나올 정도로 크게 싸웠다는 진술도 나왔다. 하지만 청송 사건은 이런 정황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특히 청송 사건은 소주를 사오고 김치냉장고에서 꺼낸 것이 모두 피해자들이다.
경찰은 마을 전체 59가구를 수색하고 98명 주민을 찾아다니며 실마리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또 마을회관 안에 있던 주민들을 상대로 마을회관에 도착한 시간과 순서 등을 조사하고 있다. 수사를 통해 밝혀지는 것이 없어 사건 발생 이후 언론 브리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은 용의점을 발견하거나 범행 동기 등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마을을 개미핥기식으로 조사하고 있는데 일주일은 지나봐야 뭔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청송/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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