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내일학교 중학 2년 과정에 다니는 늦깎이 학생 110여명이 19일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안 한학촌과 박물관으로 소풍을 떠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제공
대구내일학교 늦깎이 학생 370명
수십년만의 소풍 밤잠 설치며 설레
“팔순 넘은 엄마가 용돈 주시네요”
수십년만의 소풍 밤잠 설치며 설레
“팔순 넘은 엄마가 용돈 주시네요”
“벌써 60년의 세월이 흘러갔네요. 어린 시절 동생들이 학교 소풍을 갈 때마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부엌에서 울면서 동생들 김밥을 싸준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쳐 ‘대구 내일학교’에 다니는 늦깎이 할머니 초등학생 홍정순(70)씨는 오는 21일 대구미술관으로 소풍 간다는 생각에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들 김밥을 싸주면서 나도 소풍 가고 싶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눈물의 김밥을 싸주던 기억이 떠올라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 늦깎이 학생 370여명이 다니는 대구 내일학교 학생들이 19일부터 26일까지 번갈아가며 소풍을 떠난다. 대구 수목원, 팔공산, 가창 녹동서원, 도동서원 등 대구시내에서 10~20여㎞ 떨어진 야외로 잠깐 다녀오는 소풍이지만, 학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애환이 떠올라 감회가 남다르다.
19일에는 오전 10시께 중학교 2학년 과정에 다니는 늦깎이 학생 110여명이 계명대 성서캠퍼스 안 한학촌과 박물관으로 소풍을 떠났다. 자매가 함께 소풍에 참가한 김태순(68)·금순(65)씨는 “어릴 적에 너무 가난해서 동생과 함께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지난해 동생과 나란히 중학교에 입학하고 이제 소풍을 함께 오니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한학촌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미리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뒤 보물찾기와 노래자랑, 장기자랑 등을 즐기고 오후 2시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21일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학관으로 소풍을 떠나는 초등과정 김경숙(61)씨는 “어릴 때 학교를 못 다녀 소풍을 가본 적이 없다. 딸이 소풍 간다는 말을 듣고 팔순을 넘긴 엄마가 용돈을 주셨다.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구시교육청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른들을 위해 명덕, 달성, 성서, 금포초등학교 등에 초등과정 6곳을 개설해놓고 대구 내일학교로 이름을 붙였다. 현재 초등과정에는 133명의 늦깎이 학생이 다닌다.
또 제일중학교에 문을 열어놓은 중학 2년과 3년 과정에는 244명이 다닌다. 대구 중앙도서관에는 유일하게 야간반이 개설돼 있어, 낮에 직장에 다니는 학생 11명이 재학 중이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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