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요 배경인 우르크 태백부대와 지진 현장 등이 있었던 강원 태백의 폐탄광인 한보탄광 모습. 세트장은 지난해 11월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모두 철거돼 공터에 일부 안내 표지판만 남아 있다. 태백시 제공
강원 태백시가 최근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장을 세금을 들여 다시 짓기로 했다. 전국 곳곳의 드라마 세트장들이 찾는 사람이 적어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자칫하면 애물단지 세트장 한 곳을 늘릴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태백시는 오는 6월 말 준공을 목표로 폐탄광인 한보탄광 터에 <태양의 후예> 세트장을 재건하기로 <한국방송>(KBS) 쪽과 합의했다고 20일 밝혔다. 한보탄광 터에 건설됐던 우르크 태백부대와 지진 현장 등 주요 세트장은 지난해 11월 드라마 촬영이 끝난 뒤 현재는 모두 철거된 상태다.
문제는 20억원인 재건 비용이다. 태백시는 무리해서 종합휴양시설인 ‘오투리조트’를 짓다 재정 여건이 악화돼 지난해 지방재정 위기 ‘주의 등급’ 판정을 받을 정도다. 옛 함태초교와 매봉산풍력발전단지 등 닥치는 대로 시 소유 공유재산까지 내다 팔아 부채비율을 낮추려 안간힘을 쓰는 처지라 세트장 신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태백시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후앓이’에 기대 전폭적인 국비 지원을 바라는 눈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이어 지난 11일 문화융성위원회의에서도 잇따라 <태양의 후예>를 ‘관광산업 활성화’ 혹은 ‘창조경제의 모범’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하지만 세트장 재건에 세금을 쓰겠다고 하자 지역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태백 주민 홍진표(53)씨는 “세트장이 있는 한보탄광 일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근처에 상권도 없어 세트장을 돈 들여 다시 짓는다고 해도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태백시 관계자는 “세트장이 복원되면 연락을 달라는 여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근 관광상품과 연계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성철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타당성 검토 등도 없이 대통령 한마디에 임기응변식으로 세금을 투입하면 전국에 방치된 애물단지 세트장 한 곳을 늘리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반짝 인기가 있겠지만 얼마나 꾸준히 사람들이 찾을지 의문이란 것이다.
태백 인근 횡성의 드라마 <토지> 세트장은 세트장 유치 열풍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횡성군이 나서 43억원을 들여 세트장을 건설했지만 방문객 감소 등으로 문을 닫은 뒤 11년 만에 3억원의 세금까지 들여 세트장을 모두 철거해야 했다. 2005년 건설된 전북 익산의 <서동요> 세트장도 4년 만에 철거됐다.
제주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있는 드라마 <올인> 세트장은 지자체가 조례까지 제작해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올인하우스는 지난 1월 경매에 나왔다 지금은 이마저 중단된 상태다. 제주도 관계자는 “드라마 세트장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쉽다. 지금 <올인> 드라마를 알고 있는 관광객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태백/박수혁 기자, 전국종합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