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공장 2012년 입사 30대 정규직
전극보호제·세정제 등 생산 작업
2015년 말 몸에 반점…백혈병 진단
시민단체 “위험 모른 채 장시간 노출”
회사쪽 “작업 현장 탓 단정 우려”
전극보호제·세정제 등 생산 작업
2015년 말 몸에 반점…백혈병 진단
시민단체 “위험 모른 채 장시간 노출”
회사쪽 “작업 현장 탓 단정 우려”
이아무개(32)씨는 2012년 1월 전북 완주의 한솔케미칼 전주공장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 공장에서 전극보호제와 세정제 등을 생산하는 부서에서 일했다. 생산량이 불규칙해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근무가 잦았고, 연장근무를 월 100시간 이상 하는 때도 많았다. 빛을 보면 굳어지는 제품 특성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했다. 환풍기를 가동해도 역한 냄새가 심했다. 2015년 10월 몸에 반점이 생기고 감기 증상을 보였다. 동네 병원을 다니다가 종합병원에 갔고 백혈구 수치 이상 판정을 받았다. 그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혈액·골수에서 발생하는 혈액암이다. 그는 지금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휴직 상태로 골수이식 수술을 앞둔 이씨는 28일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그는 신체적·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막대한 치료비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씨가 이날 산재를 신청한 것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03년부터 4월28일을 ‘노동안전보건을 위한 세계의 날’로 정한 것을 염두에 뒀다.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백혈병의 산업재해 승인율이 낮다. 근로복지공단은 조속히 피해 노동자의 산재를 인정해 이씨가 안정적으로 치료에 전념하도록 보장하고, 전자산업에 만연한 노동재해를 감시해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씨는 자신이 작업 때 사용하는 물질이 어떤 것이고, 무슨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일했다. 이 물질들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용액이 눈과 피부에 튀고 분진을 호흡기로 흡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 장비와 교육은 충분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해당 회사에서 발생한 백혈병 피해가 삼성과도 관련이 있다. 이 회사가 삼성전자에 제품을 대량으로 납품했는데, 피해 노동자는 삼성이 요구하는 납품 물량을 맞추려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됐다. 자신이 취급한 물질의 위험성을 모르는 등 작업 현장도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노동자들과 여러 면에서 닮았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날 박진승 노무사가 낭독한 편지에서 “30대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비싼 치료비와 검사비용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3살 된 딸과 이제 태어난 지 2주일 된 아들을 키워야 한다. 남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치료와 검사로 살아야 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근로복지공단 쪽은 “백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공단의 질병판정위원회가 결정한다. 걸리는 시간은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솔케미칼은 “회사는 (이씨의) 건강 회복과 향후 복직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울 계획이다. 다만, 발병 원인이 불분명한 상황임에도 작업 현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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