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 만덕1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만덕5지구)에 남은 주민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사업 목적에 맞게 주민 주거권을 보장해달라”며 철탑을 만들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김영동 기자
부산 만덕5지구 철거 맞선 주민들
쇠파이프 엮어 만든 9m 망루서
행정대집행 앞 보름 넘게 농성
“보상액 예전 기준…주거권 보장을”
쇠파이프 엮어 만든 9m 망루서
행정대집행 앞 보름 넘게 농성
“보상액 예전 기준…주거권 보장을”
28일 부산 북구 만덕1동 금정산 상계봉 남쪽 산비탈 자락 끝에 있는 18만2000㎡ 규모의 만덕5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만덕5지구) 터. 많을 때는 1948가구까지 살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집들이 철거돼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철거된 집 터에서는 중장비가 폐기물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경사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가니, 아직 남아 있는 10여채의 집 가운데 ‘대추나무골 사랑방’이라는 팻말을 붙인 2층 집이 보였다. 집에는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펼침막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었다.
주택 옥상에는 쇠파이프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높이 9m의 철탑이 있었다. 근처에는 주민 5~6명이 모여 있었다. 23년 전부터 이곳에서 살고 있는 김문식(62)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한다고 20년 넘게 살고 있는 원주민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버티다 지쳐 마을을 떠났고, 17가구만 남았다. 모두 갈 곳이 없는 주민”이라고 말했다.
남은 주민들은 지난 13일 철탑을 세웠다. 철탑 위 망루에선 최수영(52) 만덕5지구 주민공동체 대표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이날까지 15일째이다.
최 대표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법원이 지난 18일까지 거주지에서 퇴거하라는 행정대집행 예고를 통보했다. 강제집행으로 집에서 쫓겨나면 우린 갈 곳이 없어 길거리를 헤매야 한다. 제2 용산참사가 될지도 몰라 불안하고 무섭지만, 살던 집에서 살고 싶어 독한 마음 먹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을 지연 추진하는 바람에 이 같은 사태가 야기됐다. 보상액이 예전 기준으로 책정됐는데, 그동안 부산의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거환경개선사업에 걸맞게 노후주택 개량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갈 곳 없는 원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해줄 때까지 고공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덕5지구는 1972년 부산의 판자촌 철거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만들어진 마을이다. 부산시는 2001년 이곳을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한 뒤 2007년 대한주택공사를 사업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합병하는 과정에서 사업 시행이 늦춰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11년 9월 만덕5지구 주민들에 대한 보상과 이주를 진행했다. 보상금 기준은 2007년 공시지가로 책정됐는데, 주변 시세와는 크게 차이가 나자 주민들은 2012년 부산시에 만덕5지구 해제 신청을 했다. 부산시가 거부하자 주민들은 법원에 ‘주거환경개선사업 인가 취소’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산울산지역본부 토지재생사업부 관계자는 “보상금은 적법하게 산정했다. 남은 주민들과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강제집행은 불가피하다. 강제집행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자진이주를 최대한 유도하겠다. 사고 방지에 중점을 두고 주민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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