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주민들이 애용하는 ‘해나루 행복버스’는 면사무소에 예약하면 태우러 와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수요응답형 교통’ 수단이다. 출포리 할머니들이 29일 행복버스 운전사 서정환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당진/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지역 현장 I 충남 산간마을 달리는 해나루 행복버스
충남도, 당진 산간마을 대호지면
이용자 요청 교통서비스 시범실시
버스와 콜택시의 중간…요금은 1400원
만족도 95.7%…“계속 운영” 100% 희망
도·시 절반 부담…논산·보령으로 확대
“행복버스만한 효자가 있겄슈”
충남도, 당진 산간마을 대호지면
이용자 요청 교통서비스 시범실시
버스와 콜택시의 중간…요금은 1400원
만족도 95.7%…“계속 운영” 100% 희망
도·시 절반 부담…논산·보령으로 확대
“행복버스만한 효자가 있겄슈”
“아저씨, 안녕하세요.” “야, 이 녀석 오늘은 빨리 나왔네?”
지난 27일 아침 8시10분, 재형이(16·중3)의 등굣길은 여느 날처럼 ‘행복버스’와 함께 시작됐다. 행복버스 운전사 서정환(36)씨는 삼촌처럼 인사를 건넨다. 재형이는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에 산다. 읍내에서도 차로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려야 재형이네 동네가 나온다. 예전에는 학교에 가려면 50분 넘게 걸어 나가 아침 7시15분 시내버스를 타야 했다. 등교시간은 8시20분인데 버스가 2~3시간에 한 번꼴로 다니기 때문에 놓치면 영락없이 지각을 했다. 행복버스가 생긴 뒤로는 지각 걱정을 안 한다.
같은 동네 사는 같은 반 기윤이(16·여)도 행복버스가 좋다. 하지만 이날은 아침부터 아저씨랑 티격태격했다. “너네 오늘 시험이지? 공부는 많이 했냐?” “아, 진짜~. 묻지 말아요.” 기윤이는 입을 삐죽이고, 재형이는 고개를 숙인다. 정겨운 말다툼을 하다 보니 금세 학교 정문 앞이다. 차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 뒷모습을 보며 정환씨가 외친다. “시험 잘 보고, 집에 갈 때 연락해라.”
정환씨는 대호지면사무소로 향한다. 면사무소로 행복버스 예약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정환씨와 당진여객운수 직원 김활란(43)씨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화를 받는다. 오전 10시, 전화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름만 들어도 어디인지 딱 안다. 운행일지에 승객 이름과 출발 시간, 예약 장소를 쓱쓱 적어 내려간다. 시간 맞춰 간 곳에 아주머니 2명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타자마자 이야기꽃이 핀다. “아니, 어제 고사리 꺾으러 갔는데 누가 내 도시락을 홀랑 가져간겨. 요즘 시골에도 도둑이 겁나 많다니께. 집에까지 들어와서 할매들 통장도 훔쳐가고, 무서운 세상이여.”
행복버스는 아주머니들을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는 또다시 출동한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 달리니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할머니 세 분이 차례로 차에 오른다. 마늘 뿌리가 썩어서 농약가게에 가는 할머니, 잘못한 일이 많아 읍내 성당에 회개하러 간다는 할머니, 면사무소에 등기 떼러 가는 할머니 등 용건도 다양하다. 할머니들은 “행복버스를 타고 다녀 행복하다”고 했다. “좋지유. 제일로 좋아. 그 전에는 나올라믄 1시간은 디지게 걸어야 했슈. 다리도 아파 죽겄는디. 이런 데 시집보냈다고 친정 부모까지 원망했다니께. 근디 인자 이 차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 충남으로 확대된 행복버스 행복버스의 애초 이름은 효도버스다. 효도버스는 충남도의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Demand Responsive Transport) 사업의 일환이다.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이동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운영방식으로, 버스와 콜택시의 중간 형태다. 지난해 3~7월 당진시에서 효도버스를 시범사업으로 운행했는데, 당진에서 이를 ‘해나루 행복버스’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승합차다.
대호지면이 시범사업지로 꼽힌 것은 그만큼 대중교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6번만 시내버스가 운행하고 택시도 없다. 지금은 주민이 면사무소 예약 창구로 전화하면 행복버스가 집 앞까지 찾아간다. 등교하는 학생들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이용하면 예약하지 않아도 태우러 간다. 어른 1400원, 청소년 1100원에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50원 싸다. 시내버스와 환승도 된다. 시범사업 결과 주민 만족도가 높아서 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 행복버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31일 동안 756차례 1878명이 이용했다. 충남연구원이 이용 주민 181명을 조사해보니, 만족도가 평균 95.7점으로 나왔다. 예약하기 쉽고, 환승도 편리하며, 시간 약속도 잘 지켰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응답자 100%가 계속 운영하기를 바랐다. 이는 충남도가 효도버스 사업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충남도는 수요응답형 교통체계를 천안, 보령, 논산, 홍성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차량 구입비와 운전사 인건비, 운행 관리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작년 7월에 행복버스가 없어진다고 해서 시청에 전화해 따졌지유. 이 차 없으면 이 동네 노인네들 죽는다고.”
옷과 신발을 분홍색으로 맞춰 입고 행복버스를 기다리던 김연희(84) 할머니의 출포리 집은 행복버스의 거점이다. 할머니 집이 이 동네 경로당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은 김 할머니 집에 모인 뒤에야 노인대학에 가고, 시장에 가고, 우체국에도 간다. 그래서 이 집에는 날마다 행복버스가 온다. “이제 기사 양반이 한 식구 같지유. 이 차 없으면 다리 아파서 읍내 병원 같은 데도 못 가. 그전에는 동네사람한테 차 좀 태워 달라고 부탁했는데 자주 부탁하려니 어렵쥬. 그러니 이 버스만한 효자가 있겄슈?”
“젊은 사람들도 걸어 나오기 힘든 곳이 많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리가 아프니까 경로당도 멀어서 못 가세요. 장 한번 보려 해도 차 없이는 힘드시죠.” 정환씨는 이 일이 좋다고 했다. 다른 버스 운전하는 것보다 보람이 크기 때문이란다. “출포리 할머니 한 분이 허리가 많이 굽으셨는데 돈 아낀다고 1시간씩 걸어 다니시더라고요. 지나다 뵈면 안쓰러워 차비 안 받고 태워드리기도 해요. 행복버스를 애용하는 분들은 늘 좋아하시고 늘 고맙다고 인사하세요. 커피 마시고 가라고 소매를 잡아끄는 분도 있고, 콩 같은 걸 싸주는 분들도 계시죠.”
■ 행복버스 확대를 위한 선행 과제 당진여객운수의 김영만(37) 대리는 주민들 반응이 좋다고 하면서도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대호지면 5개 마을에는 기존 시내버스 노선이 살아 있어요. 회사 입장에선 노선을 이중으로 운영하는 꼴이어서 난감할 때가 많아요. 행복버스는 차량이 1대뿐이어서 제때 수리하기가 어렵기도 해요. 1대 더 늘려보려고 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쉽지 않더라고요.” 충남도와 당진시가 절반씩 예산을 나눠 지원하고 있지만, 운수업체로선 기존 노선이 줄지 않는 이상 수익이 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분석한 충남연구원은 “기존 시내버스 노선을 폐지한 뒤 행복버스를 2대 운행하는 식으로 수요응답형 교통체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운영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진시 버스노선체계의 개편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원철 연구원은 “수요응답형 교통체계는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이동권 확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지역 외곽에 사는 이들은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지방정부 등 공공이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진/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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