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외교부 등 반응 없자
‘국제 평화기구 유치’로 방향 틀어
“예산 낭비, 전시성 행사만 열올려”
‘국제 평화기구 유치’로 방향 틀어
“예산 낭비, 전시성 행사만 열올려”
유엔 제5사무국을 유치하겠다며 2년 연속 예산을 편성하고, 지원조례까지 제정한 경기도 고양시가 아무런 설명 없이 유엔 사무국 유치 계획을 슬그머니 철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고양시는 이제 대신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겠다며 행정력을 쏟고 있다.
11일 고양시 설명을 종합하면, 최성 고양시장은 지난달 중순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국제평화기구 유치 의향서와 서명부를 전달했다. ‘유엔 사무국’을 포기하고 지난달부터 돌연 ‘국제평화기구’에 달려든 셈이다.
이는 사무국 유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유치활동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물론 외교부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미 전문가들은 “유엔 사무국 유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결단할 사안이고, 법규상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항의 처리를 위임받은 기초단체의 고유업무와도 무관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한겨레 1월8일치 13면)
앞서 고양시와 고양시의회는 지난해 10월 최성 시장과 일부 시의원 주도로 ‘고양시 제5유엔사무국 유치활동 지원협의회 설치·운영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국내외 유치운동을 벌여왔다. 공무원과 민간인으로 티에프(TF)팀을 꾸리고, 유엔 사무국 유치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25만명의 서명까지 받았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 2억2000여만원을 편성해 유엔 본부와 사무국이 있는 미국과 유럽을 방문하고 국외 세미나, 포럼, 음악회 등까지 열어왔다.
그러다 남은 예산을 국제평화기구 유치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시 안팎에선 ‘아니면 말고’식의 무모한 행정력 낭비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민 이아무개(50)씨는 “처음부터 황당하고 뜬금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 시정에 대해 불신만 커졌다. 마치 뭔가 이뤄질 것처럼 시민을 호도한 데 대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최 시장이 지역 현안에는 관심이 없고 전시성 행사에만 열을 올린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김미수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사상 최초로 시청사 안에 천막 농성장이 설치되는 등 시정에 대한 시민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데도 지역은 돌보지 않고 이벤트성 행사만 쫓아다니는 사람에게 시장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고양시청 현관에는 서정초등학교 학부모 50여명이 학교 앞 방사선 공장 허가 취소와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사흘째 천막농성을 벌였다.
이에 고양시 관계자는 “기초단체가 하기에는 부담이 있고 외교부도 협조를 안 하는데다, 유엔 사무국 관계자로부터 부정적 의견을 듣고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제5사무국 유치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일단 평화·인권과 관련된 유엔기구를 유치한 뒤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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