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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원폭 피해자 2세 고 김형률씨 11주기 추모제 27일 부산에서 열려

등록 2016-05-26 16:54

고 김형률씨는 국내 원폭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 2세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온몸을 던진 반핵평화인권운동가이다. 1970년 부산 동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생후 20일째부터 온갖 병치레에 시달렸다. 아버지 김봉대씨는 “아픈 형률이를 안고 집 근처에 있는 ㅊ병원에 수십년동안 뛰어다녔다. 폐가 좋지 않았는데, 병원에서도 원인을 몰랐다. 가슴이 미어터졌다”고 말했다.

김형률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폐렴으로 병원에 10여차례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다. 폐렴이 반복되자 김씨의 폐 기능은 4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성인이 됐지만 그의 키는 163㎝에 몸무게 37㎏으로 왜소했다. 2002년 폐렴 때문에 또다시 ㅊ병원에 입원한 그는 우연히 자신의 진료기록에 첨부된 ‘모체 유전에 의한 선천성 면역결핍증’ 연구논문을 봤다.

김형률씨는 자기한테 알리지도 않고 몰래 연구논문을 작성한 ㅊ병원 의사한테 따져물었다. 그는 “김형률씨의 입원치료가 너무 잦아 원인을 따지려고 연구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당시 6살의 나이에 방사능에 피폭됐고, 악성 종양과 피부병에 시달렸다. 그의 동생도 태어난지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김형률씨는 그때서야 폐질환, 재생 불량성 빈혈 등 자신이 왜 잦은 병치레에 시달리는지 알게 됐다. 병명은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이다. 원자폭탄에 피폭된 어머니한테서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 것이다.

김형률씨는 2002년 3월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폭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라고 스스로 밝혔다. 원폭 피해자 2세도 피폭후유증을 대물림해 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처음 알린 것이다. 그는 8개 시민단체와 함께 ‘원폭 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 진상규명을 내용으로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원폭 피해자 2세 일부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를 조사해 2005년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원폭 피해자 1~2세 모두 질병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45년 일본 내무성 경보국이 작성한 자료에는 히로시마 7만명, 나가사키 3만명 등 한국인 10만명이 피폭돼 5만명이 숨졌고, 생존자 5만명 가운데 4만3000명이 해방 뒤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국내 원폭 피해 생존자는 지난달 말 현재 2494명에 불과하다. 원폭 피해자 2세의 현황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형률씨는 원폭 피해자 2세들의 모임인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며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과 원전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그는 전국을 다니며 원폭 피해자들의 실상을 알리다가 2005년 5월29일 폐렴으로 서른다섯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김봉대씨는 “아들의 면역력은 정상인에 견줘 17분의 1정도에 불과했다. 꾸준한 치료로 면역력이 정상인의 3분의2 정도까지 올라왔는데, 폐렴으로 먼저 갔다”고 울먹였다.

김형률씨와 시민단체의 꾸준한 노력으로 지난 19일 19대 국회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 지원, 피해자 추모 기념사업 실시 등 내용이 담긴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특별법에 원폭 피해자 후손에 대한 지원 부분이 빠져 있어 20대 국회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들끓고 있다.

아버지 김봉대씨는 “이제서야 특별법이 제정되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20대 국회 때 개정될 것으로 기대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아직까지 피해자들을 위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등 문제 해결에 노력해달라”고 촉구했다.

김형률씨의 뜻을 이어가려고 2006년 발족한 ‘김형률 추모사업회’는 28일 오전 11시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민주공원 작은방에서 ‘한국원폭 2세 피해자 김형률 11주기 추모제’를 연다. 추모사업회는 이날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에 김형률 추모관을 세울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아버지 김봉대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형률이가 살아있을 때 일본·미국 정부를 상대로 원폭 피해자 소송을 해달라고 부탁했어. 가슴에 묻은 자식의 유언인데, 반드시 해내야지. 도와주는 변호사들과 함께 소송을 추진하고 있어. 그래야 나중에 형률이를 만나도 내가 할 말이 있지.”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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