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용어를 언제부터 썼을까?”
‘동학혁명’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유물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기증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특수법인 동학혁명기념재단은 최근 동학혁명 참여자인 김우백의 증손 김정완(71)씨로부터 ‘경통’(敬通, 통지문의 높임말)을 기증받았다고 27일 밝혔다.
‘김우백 경통’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인 김우백의 부인 박씨가 혁명에 참가한 뒤 체포됐다가 풀려나 후유증에 시달리는 남편을 정성껏 봉양한 열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통은 전남 무안향교에서 1912년 작성해 주변에 알린 일종의 통지문으로, 내용 중에 ‘동학혁명’ 용어가 사용돼 혁명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학계는 일제강점기에 천도교 안에서 ‘동학란’ 대신 ‘동학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언제부터 사용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동학혁명기념재단 이병규 연구조사부장은 “이 유물은 또 동학혁명 참여자의 부인이나 자손을 열녀 또는 효자로 칭송해 우회적으로 동학혁명 참여자의 죄를 벗겨주는 신원의 의미를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동학혁명기념재단은 또 박영재(71) 전 연세대교수로부터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중국·일본의 인식을 알 수 있는 중국·일본 희귀 서적 등 160권을 기증받았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