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가 빨아 먹은 피에서 인간의 유전자(DNA)를 채취해 분석하는 수사 기법이 국내에서 처음 도입됐다. 폐쇄된 현장에서 벌어진 강력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과학수사계 소속 김영삼(48) 검시관이 연구논문 ‘흡혈 모기로부터 분리한 인간유전자형 분석’을 이달 초 한국경찰과학수사학회에서 발표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검시관은 논문에서 “흡혈 곤충인 모기의 몸 속에 들어있는 혈흔 물질에서 인체 유전자를 찾는 연구를 시도한 결과, 흡혈 모기 6마리의 몸으로부터 얻은 혈액 성분을 통해 개인 유전자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모기는 혈액을 흡입하면 몸이 무거워져 현장에서 106.7m 안팎에 존재하고, 170m 이상은 날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범죄가 발생한 폐쇄된 현장에서 발견된 흡혈 모기는 용의자 추적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인 김 검시관은 2006년 검시관 특채로 과학수사계에 입문한 뒤 2009년부터 이 연구에 매진해왔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실험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범죄 현장에서 흡혈 모기를 통해 유전자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해 1월 경기도 파주의 한 모텔에서 이혼 소송과 위자료 문제로 다툼이 있던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남편이 부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현장 문틀에 있던 모기 혈흔을 닦은 면봉 2점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해 남성의 디엔에이형을 검출했다. 아쉽게도 피의자의 것이 아니라 이전에 투숙했던 남성의 디엔에이로 밝혀졌지만, 과학수사기법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선례가 됐다.
국외에서는 이 기법을 사용해 실제로 주요 용의자를 붙잡은 사례도 있다. 2005년 이탈리아에서는 해안가에서 여성을 살해한 용의자의 유전자를 흡혈 모기의 혈액을 통해 밝혀내 검거했다. 2008년 핀란드에서는 도난당해 버려진 차 안에서 모기를 발견해 용의자의 유전자를 확보해 구속하기도 했다.
김 검시관은 “최근 범죄 현장에는 범인들이 지문을 잘 남기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수사기법이 강력사건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모기에 이어 벼룩과 이, 진드기, 파리 등 다른 흡혈 곤충들에 대한 연구를 확대 진행할 예정이다.
의정부/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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