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국내 복무 고엽제 휴유증 피해자인 오동주씨가 피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분명히 고엽제 후유증인데 국방부는 제가 고엽제 살포지역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군복 입고 청춘을 국가에 바쳤는데 외면당할 줄 몰랐습니다.”
오동주(69·예비역 육군 원사)씨를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만났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승소했다는 기쁨도 잠시, 육군본부가 항소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다.
그는 1966년 입대해 강원도 화천의 7사단 8연대 근무를 시작으로 27년 동안 군인이었다. 입대 1년 만인 1967년 8월 15일 제1유격대대(대대장 김복동) 창설 부대원이 됐다. 이 부대는 북한의 잦은 침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육군본부 직할 특수부대였다. 미군 레인저부대 같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부대원을 선발했다. 부대원들은 명예의 상징으로 길이가 1m나 되는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둘렀다.
이 부대는 67년 11월20일부터 12월4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김화면 오성산 동쪽 일대의 3사단 비무장지대(DMZ) 지오피(GOP) 지역에서 첫 작전을 수행했다. 장교 36명, 사병 676명 등 대대원이 모두 산악지대에 투입돼 저녁에 매복하고 오전 4시께 철수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3중대는 장교 5명과 사병 160명으로 꾸려졌고, 그는 당시 하사로 2소대 2분대장을 맡았다.
그는 “지오피에 들어갔더니 목책 대신 철책이 새로 설치돼 있었다. 북쪽으로 제초작업, 사계청소를 하느라 나무는 베어지고 풀잎은 붉은 빛을 띠고 말라 있는 등 엉망이었다. 풍경이 무척 을씨년스럽고 삭막했다”고 회고했다. 사계 청소는 사격에 방해되지 아니하도록 진지 앞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다.
“이걸 보세요.”
그가 보병제3사단이 펴낸 백골사단역사(1947.12.1~1980.10.31) 복사본을 꺼내 들었다. ‘시계청소(1967.9.1~9.20) (군)사작전 370(1967.8.23)에 의거 사단은 9.1~9.30 까지 대간첩작전 강화의 일환으로 DMZ 및 GOP지역 목책선 전후방 1㎞ 및 주요 보급로 주위의 시계청소로 연병력 792/1만8121명을 동원해 실시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또 ‘1967.9.25~11.20에 3사 작전 370(1967.10.6)에 의거해 기존 목책을 쇠고리 철망과 유(U)자 윤형 철조망으로 대치했다. 우측방 시티(CT) 674377 지점부터 시티 650392 지점은 제18연대와 제22연대가 설치를 맡고, 좌측방 시티 531407 지점부터 시티 554403 지점까지는 제23연대 및 포병이 설치를 맡아 공사를 실시했다’는 기록과 함께 철망 울타리 공사를 마친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오씨는 “철책 공사는 67년 8월께 시작됐다. 수풀이 우거진 지뢰 지역에서 작업하면서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철책을 희생 없이 설치하려고 월남전에서 쓰던 고엽제를 가져와 한국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시험한 것이 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고엽제 효과를 보거나 들은 부대장들은 앞다퉈 관할지역에 고엽제를 뿌렸으며, 이런 상황은 68년 상반기에 철책 공사가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고 한다.
그는 1995년에 느닷없이 당뇨가 생겼다. 임파선이 이상해지고 갑상선도 건강하지 않다고 하더니 폐기능에도 문제가 나타났다. 항암치료를 받다가 증세가 모두 고엽제후유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고엽제 후유 환자 등록 신고가 기각되자 병든 몸을 이끌고 인천 집을 나서 서울 용산의 국방부, 충남 계룡시의 육군본부, 국가보훈처 등을 찾아다니며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다녔다. 옛 전우들도 수소문해 소대장과 중대장 등 4명을 찾았으나 다 비슷한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4년동안 357차례나 민원을 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자신의 병역 기록을 추적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다 2014년 3급 비밀로 분류된 <제5군단 승진 30년사>를 열람해 제1유격대대가 3사단 지역에서 작전을 했고, 3사단에서 사계청소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인천보훈지청을 상대로 ‘고엽제 환자등록신청 기각 결정 취소’ 소송을 하면서 이유호 변호사를 만났다. 인천보훈지청과의 소송은 패소했지만 보훈처 대신 국방부·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씨는 미등록 휴전선 고엽제 피해자의 고통을 신문에 기고한 김동윤씨의 글을 보고 연락해 비밀해제된 미군 비밀문서 초목통제계획(CY-68)과 이 문건에 기록돼 있는 67년 살포된 고엽제 성분도 확보했다.
지난달 7일 대전지법의 승소 판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룬 성과였다.
그는 67~68년 전방 10개 사단이 모두 휴전선 근처 목책을 철책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고엽제를 살포했고, 참호와 교통로 등에도 고엽제가 뿌려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라의 명령을 받고 작전하다 얻은 병이고 내 몸이 증거인데 고엽제후유증 환자 등록을 안 해주니 억울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국가가 이래도 되나 싶다. 좋은 신약을 쓰려면 매달 수백만원 약값을 마련해야 한다. 세상을 떴거나 아직 고통으로 신음하는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싶다”고 말했다. 육군본부는 1심 판결 직후 항소했다.
최예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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