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120명이 주택 돌면서 꽂거나
초인종 눌러가며 집집마다 게양 요청
관계자 “게양 적은 아파트 동 빼고 세”
동원 직원들 평일에 쉬어 행정력 낭비
주민도 신연희 청장 ‘안보1번지’ 비판
초인종 눌러가며 집집마다 게양 요청
관계자 “게양 적은 아파트 동 빼고 세”
동원 직원들 평일에 쉬어 행정력 낭비
주민도 신연희 청장 ‘안보1번지’ 비판
서울 강남구가 “광복절 관내 태극기 게양률이 90%에 육박했다”고 17일 밝혔다. 하지만 태극기 게양률을 끌어올리려고 휴일 공무원을 동원하고, 허술한 ‘눈대중’ 조사를 한 것으로 밝혀져 엉뚱한 곳에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안팎의 비판이 나온다. 신연희 구청장은 태극기 달기 사업 관련 직원을 지난달 특별승진시키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구가 이날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5일 구민들의 태극기 게양률은 87.5%이다. 지난해 광복절 86.3%보다도 1.2%포인트 상승한 결과로, 관내 23만여가구(올 1월 기준) 가운데 깃발 게양이 불가능한 타워팰리스 등 주상복합건물을 제외한 19만가구 가운데 15만가구가 일제히 태극기를 게양했다는 말이다.
동별로는 일원1동 96.8%, 삼성1동이 95.4%로 게양률이 가장 높았다. 반면 압구정동(73.0%), 일원본동(71.0%)은 낮았다. 강남구는 “전국의 태극기 게양률이 평균 10%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수치엔 틈이 많다. 무엇보다 강남구는 이날 태극기 달기 근무조를 편성해 직원들이 직접 국기를 달도록 했다. 각 과에서 4~5명씩 차출돼 120명 이상이 관내를 돌며 ‘남의 집’에 국기를 달거나, 달도록 독려한 것이다. 강남구 한 직원은 “국경일마다 계속 해왔던 일”이라며 “공무원들이 태극기 200~300개씩 들고 다니면서 단독주택가에선 그냥 꽂기도 하고, 아파트에선 가가호호 초인종을 누른 뒤 국기 게양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아침부터 사생활 방해한다는 항의와 민원도 꽤 받아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솔직히) 우리 직원들이 태극기를 많이 달았다”고 말했다.
조사 방식도 허술하다. 다세대주택 등은 게양된 국기 수를 세기 어렵다 해도, 아파트에서조차 태극기 게양 실태를 전수조사하지 않았다. 구 관계자는 “9만가구가량 아파트의 단지별 1개 동만 샘플로 조사해 수치에 반영했다. 옆 동이 국기 수가 적다 싶으면 수치를 좀 뺐다. 일일이 다 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구청장의 핵심 사업(‘강남구 안보 1번지’)으로 공무원이 동원되는 상황이라 태극기 수가 가장 많은 동들이 ‘샘플’로 선택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조차도 상당한 행정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 자치행정과 직원들로만 구성된 조사 인력(2인 1조로 5개 조)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내를 누비며 게양률을 조사했다.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도대체 서울 한복판인 강남에서 왜 안보 1번지를 기치로 삼는지, 강남구 직원들이 나서서 할 만큼 그렇게 필요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근무한 직원들은 이후 근무일에 쉬게 된다. 정작 해오던 대민업무 등이 늦춰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일원1동의 한 아파트 거주민은 “작년쯤부터 국경일이면 아침 9시반부터 대형 스피커 차량을 동원해 애국심 고취 내용 및 국기 게양하라는 방송을 내보낸다. 선거 기간도 아닌데 정부기관이 고음의 홍보차량으로 이래도 되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남구는 “그동안 태극기 사랑은 애국심과 국가안보의 최고 마중물이라는 판단 아래 태극기 사랑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런 높은 수치 뒤에는) 구청의 다각적인 노력과 58만 구민의 성원이 있었다. 관내 게양률이 100%에 육박할 때까지 태극기 달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게양된 태극기. 강남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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