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북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통일토크쇼 ‘통일은 과정이다’에서 참석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른쪽부터 사회자 박혜진 전 <문화방송> 아나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한반도+]
광복 71돌 통일토크쇼 ‘통일은 과정이다’
광복 71돌 통일토크쇼 ‘통일은 과정이다’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할 수 없다. 저절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룩해나가는 과정이다.”
광복 71돌인 지난 15일 오후 2시 전북 전주시 덕진동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서 전국 순회 통일토크쇼 ‘통일은 과정이다’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박혜진 전 <문화방송>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크쇼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토론자로 나섰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은 개회사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 현실적인 접근 필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남북관계 개선 등 4가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 이사장은 특히 “통일은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남과 북이 서로의 차이점은 제쳐두고 교류·협력을 통해 공생공영하며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장에는 시민 4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3시간 동안 토론회를 지켰다. 시민 이미영(56)씨는 “의미있는 말을 들었고 좋은 시간을 가졌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사드 철회 한목소리
토론자 3명 모두 평화통일을 위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해결을 강조했다. 정동영 의원은 “사드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왜냐면 통일 문제가 공허해진다. 사드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엄청난 위기다. 사드를 머리에 이고는 통일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사드를 우회해서는 통일·평화 얘기는 불가능하고 사드는 미국의 군사패권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또 “정부가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선비핵화) 하더니, 비핵화 얘기를 안 한다. 지난 2월 개성공단을 폐쇄해서라도 국제공조를 강화해 북핵 포기를 유도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몇 달 뒤 사드 배치를 얘기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드 발표날(7월8일) 전까지 한반도 주변이 5 대 1로 북한이 고립된 상태였다. 그러나 사드 국면에서 3 대 3으로 바뀌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이익에 손익계산을 따져봤는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사드는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미국이 엠디(미사일방어) 체제 완성 일환으로 하는 것이다. 만약 북한용이라면 제일 가까운 평택에다 배치해야 한다. 수도권을 패트리엇 미사일로 방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진짜 강한 것을 인구 절반이 있는 수도권에 배치해야 한다. 사드를 빼고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사드 비용과 관련해 “만약 북한을 방어할 이유가 있다면 (사드를) 우리 돈으로 사서 우리 부대에 가져다 놓고 우리가 작동하면 된다. 국방비(약 385억달러)도 충분히 쓰는 나라가, 사드 필요성이 있다면 군사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사드를 반대하면 종북이고 좌빨이다. 최근 중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더니 정부를 비판했다고 매국 행위라고 얘기했다. 매국은 권력자가 국가주권을 외국에 팔아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사드가 분단 지향 세력에게는 보약일지 모르지만, 통일 지향 국민에게는 사약”이라고 역설했다.
지난 7월 교육부가 사드 홍보를 요청하는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보낸 사실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전북도교육청은 교육부의 방침을 거부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보면 두 가지가 핵심이다. ‘정치적 논란이 있을 경우 학생들에게 세뇌시키지 마라’와 ‘논쟁성이 있을 경우 결론이 날 때까지 논쟁적 상황을 계속 유지하라’이다. 여기에 맞지 않아서 책임질 각오를 하고 정부 요청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1976년 서독의 보수 및 진보 정치교육학자들이 토론 끝에 정립한 교육지침이다. 김 교육감은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전쟁을 통한 한반도의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사드는 미국 군수기업이 만들었는데 왜 그 소비처가 하필 한반도여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10년 전과 비교한 설문조사를 보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젊은층도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킨 적도 있지만 팩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남한과 북한은 2005년 역사적인 9·19 공동성명을 이뤄냈다. 그러나 성명 다음날인 9월20일 미국이 북한에서 위조지폐로 돈세탁을 해 마카오의 은행에다 저금해놓고 나쁜 용처로 쓴다며 다른 나라와 거래를 못 하도록 동결시켰다. 그들과 약속을 했는데 미국이 그다음 날 뒤집은 것이다. 북한을 믿을 수 없는 대목도 있지만, 북한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면 된다. 이는 북한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 전 장관은 “우리가 북한에 쌀과 비료를 제공했듯이 우리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끌고 가야 한다. 그게 전략이고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통일은 대박?
현 정부의 대북관계 방침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에 대해 토론자들은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정동영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관련 표어는 훌륭한 말이다. 하지만 빠져 있는 게 있다. 상대는 북한인데 북에 대한 개념 자체를 규정하지 않는다. 1991년 노태우 정부의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인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현 정부는 두 가지가 없고, 한 가지가 있다. 한반도 미래에 대한 구상·비전이 없고, 대북전략을 가진 인물이 없다. 하지만 21세기인데도 1970년대 냉전의 낡은 인식과 경험만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세현 전 장관은 “대통령 개인이 가진 대북관이 굉장히 중요하다. 대통령이 북한에 관해 중립적이면 남북관계를 원만히 풀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적대의식을 가지면 대개 북한붕괴론을 믿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노골적으로 붕괴론을 믿었다. (현 정부는) 말은 화려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1차 단계여야 한다. 어떻게 1층이 없는 2층 집을 지을 수 있나. 대북 적개심 때문에 북한이 먼저 조건을 조성해주기 전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헛바퀴가 돌고 있다”고 말했다.
방청객과도 소통
이날 토론회는 시작 전 미리 방청객에게 ‘통일은 □이다’, ‘분단은 □이다’, ‘북한은 □이다’ 등의 문구를 나눠준 뒤 채워넣도록 했다.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적은 문구도 일부 나왔다. ‘통일은 하나다’라고 쓴 노은선(18·전주제일고3)양은 “통일에 대해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고, 남북한도 입장이 다르지만 같은 민족으로 지향해야 할 점이 같다”고 말했다. ‘분단은 현재를 묻는 질문이다’라고 적은 이윤상(48) 목사는 “남북 분단은 해방 이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혀 일어났다. 사드 문제도 그 와중에 있다. 민족의 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지배자의 거짓선전도 있다. 분단은 현재의 우리를 볼 수 있고, 이 나라의 미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전주/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지난 15일 전주에서 열린 통일토크쇼 ‘통일은 과정이다’에 참석한 방청객들이 주최 쪽이 마련한 ‘통일은 □이다’ 등의 질문에 다양한 답변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반도평화포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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