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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땅·물·바람은 우리 미래 달린 공동자원이죠”

등록 2016-08-22 18:42수정 2016-08-22 21:24

[짬] 제주 지역연구가 최현 교수

그는 흔히 북촌이라 불리는 조선시대 양반의 대표적 거주지 계동에서 나고 자란 ‘100% 서울토박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지금 제주에 ‘입도’한 지 10년째다. ‘제주 이민 열풍’이 불기 전이다. 일자리를 따라 제주에 왔다. ‘노동 이주’라고나 할까?

제주대 최현(사진·사회학과) 교수. 그는 2007년 1학기부터 제주대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며 ‘제주 사람’으로 산다. 주말이나 방학 땐 가족을 만나러 ‘출륙’하는 교수들도 많지만, 그는 그냥 제주에 산다. ‘제주 사람보다 오름을 더 잘 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주 구석구석을 누빈다. 그는 스스로를 “제주 이주 1세대”라고 말한다. 그의 생계와 삶과 인간관계의 터전이 제주라는 뜻이다.

서울토박이로 제주살이 10년째
제주대 교수로 ‘노동이주 1세대’
‘현지인보다 더’ 구석구석 답사

곶자왈·지하수 등 ‘공동자원’ 중요
공동연구서 2권·번역서 동시 출간
“연구자로서 제주의 선물에 답례”

‘제주 사람’이 된 뒤, 그는 제주와 관계된 일이라면 종횡무진으로 간여해왔다. 제주도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제주참여환경연대의 공동대표를 지냈고, 제주특별자치도(도지사 원희룡)가 지난 4월 의욕적으로 꾸린 인권위원회·노동위원회·양성평등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식이다.

연구는 학자의 본업 중의 본업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그는, 당연하게도 제주를 연구한다. 제주대 한국사회과학(SSK)연구단의 단장으로서, 2011년 9월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자연의 공공적 관리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 주제로 10년 계획의 장기 연구를 이끌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제주 이민 열풍’을 낳은 제주의 땅·물·바람 따위를 연구한다.

‘자연의 공공적 관리와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학술적 주제와 제주의 땅·물·바람은 어떻게 연결되나? 육지와 달리 제주엔 마을공동목장·곶자왈·지하수·마을어장 등 다양한 공동자원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제주엔 2014년 기준으로 57곳의 마을목장이 있다(1943년 123곳). 더구나 제주에선 지하수 등 공동자원의 이용과 관리를 둘러싼 문제가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다.

그는 말한다. “프리 모던(전근대)은 포스트 모던(탈근대)과 통하는 데가 있어요. 제주의 좋은 점은 근대화가 덜 됐다는 사실이에요. ‘백성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관심을 쏟은 전근대의 경제(經世濟民) 관념이 아직 살아 있죠. 근대사회는 생산성·효율·이윤만 좇아 많은 문제를 낳잖아요. 전근대의 유산인 공동자원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경제를 변화시키는 지렛대가 될 수 있어요. 근대성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공동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예를 들어보자. 육지에서는 땅 소유권을 지닌 사람이 그 땅밑을 흐르는 지하수 이용권도 지닌다. 제주는 다르다. 제주에서 지하수는 ‘공공의 자원’으로 법에 규정돼 있다. 2006년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310조다. 지하수를 대하는 제주의 태도는 육지와 왜 다를까? 최 교수는 말한다. “제주엔 지표수, 곧 땅 위를 흐르는 하천이 없어요. 제주 사람들은 전적으로 지하수에 의존해서 살아야 해요. 난개발로 지하수가 오염되면 제주는 대책이 없어요.” 하천이 없는 땅, 화산도이자 현무암이 흔한 제주의 숙명이다.

최 교수가 “제주의 콩팥인 곶자왈을 지켜야 해요”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제주를 찾은 ‘육지것들’(육지사람)한테 곶자왈은 이국 취향의 구경거리이지만, 제주 사람한테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신체의 장기인 콩팥과 다름 없다. “곶자왈은 용암바위에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룬 곳이죠. 할망(할머니)들은 ‘바위는 나무에 의지하고 나무는 바위에 의지해서 사는 곳’이라고 하시죠. 용암바위로 이뤄진 탓에 근대 이전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개발하지 않고 배후지로 남겨놓은 곳이에요. 목축엔 활용했죠. 관광객들이 곶자왈에서 소를 볼 수 있는 이유죠. 제주에선 비가 내리면 땅에 바로 스미는데, 곶자왈은 지하수를 저장하는 스펀지같은 구실을 해요. 그 곶자왈이 개발돼 아스팔트로 뒤덮히면 빗물이 지하수로 스미지 못해요. 곶자왈을 없앤 곳에 골프장을 만들고 농약을 뿌려대면 지하수가 오염돼 먹을 수 없는 물이 돼죠.” 곶자왈은 제주의 지하수를 맑게 하는 거대한 자연 정수장이라는 뜻이다.

곶자왈과 마을공동목장은 중산간에 몰려 있고, 중산간은 제주에서 가장 많은 지하수를 품고 있다. 중산간이 난개발되면 지하수가 오염되고 제주 사람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지하수는 모두의 것인가, 땅 소유주의 것인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1990년대 후반부터 ‘유한한 공공재’로서 지하수의 특성에 주목해 토지 소유권자의 지하수 개발권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판례·결정을 내놓고 있다.

최 교수는 이렇듯 지난 5년간 십수명의 국내외 연구진과 함께 제주의 땅·물·바람을 연구해 자연과 인간의 공생, 곧 “자연을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그 혜택을 공유”하는 길을 이론화하려 애쓰고 있다. 최근엔 5년의 연구 성과를 담은 <공동자원의 섬 제주 1…땅, 물, 바람> <공동자원의 섬 제주 2… 지역공공성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두권의 공동 연구서를 펴냈다. 아울러 “꿈을 잃지 않은 세계의 시민에게 바친다”는 부제를 단 공동자원 이론서인 <현대총유론>(이상 진인진 펴냄)을 번역해 내놨다. 제주대 한국사회과학연구단 공동자원연구총서 1~3권이다. 공동자원에 대한 이런 체계적 연구는 국내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다.

최 교수 등 공동연구자들은 이 책들을 “제주의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에 대한 연구자의 답례품”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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