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의 배추밭에서 농민 김국현(61·오른쪽)씨와 인부들이 배추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는 폭염 때문에 배추들이 고생 좀 했죠.”
짙푸른 배추 겉잎이 흐드러지게 밭을 가득 덮었다. 고랑에는 뽀얀 속살의 가을배추가 열을 맞춰 쌓여 있었다. 지난 26일 오전 충남 아산 배방읍 세교리. 넓게 펼쳐진 배추밭 한 귀퉁이에서 가을배추 출하가 한창이었다. 10명 남짓의 인부들은 흩어져 빠른 솜씨로 “척척척” 밑동을 따 망과 상자에 배추를 담았다. 5t 트럭 2대가 밭 옆을 지키고 서서 ‘배추 탑승’을 기다렸다.
이날 출하된 것은 김장배추치고 이른 배추다. 김장은 10월말부터 12월까지 2개월가량 출하하는 가을배추로 한다. 가을배추 출하는 한반도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간다. 강원도, 경기도에서 가을배추를 따면 충청도, 전라도 순으로 바통이 넘어간다.
아산 배방읍에서 배추 농사 짓는 김국현(61)씨는 지난 7월말 배추씨를 뿌려, 8월22일 싹을 다시 밭에 옮겨 심었다. 올여름을 못살게 군 폭염이 김씨의 속을 태웠다. 김씨는 “유독 날이 뜨거우니 배추 싹도 같이 타들어갔다. 싹 옮겨 심고 한 1주일은 올해 배추 농사 다 망할까 싶어 잠도 못 잤다. 8월말쯤부터 날이 풀려 그나마 살았다. 폭염으로 배추 싹 중 십분의 일이 죽었지만, 결론적으론 다른 해에 비해 농사가 그리 잘되지도 못되지도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다 키운 배추는 전국을 다니며 채소를 사들이는 장수들에게 주로 팔린다. 평당 얼마씩 흥정해 계약하면 장수가 인부를 데려와 배추를 직접 따서 트럭에 실어간다. 김씨는 올해도 밭 1평에 5000원으로 배추를 넘겼다. 1평에서 11~12포기가 자라니 1포기에 약 450원꼴이다. 망에 담겨 트럭에 실리는 배추는 서울 가락시장에서 경매를 거쳐 전국 시장으로 풀리고,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기는 것은 김치공장으로 간다. 일부는 상자에 담겨 대만 등으로 수출한다.
판로가 늘었어도 김씨 몫의 배추값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26일 기준 배추 상품의 평균 소매가격은 3792원으로 지난해 평균(2394원) 대비 58%가량 올랐다. 하지만 김씨의 배추는 10년 넘게 같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김씨는 “해마다 배추 농사에 들어가는 돈은 느는데 농가에서 도매상에 넘기는 배추값은 거의 차이가 없다. 싸게라도 일단 다 파는 게 급하니 어쩔 수 없다. 시장에서 팔리는 배추값이 올라도 농민과는 별 상관이 없다. 갈수록 힘들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을·겨울배추 전국 최대 생산지인 전남 해남의 사정은 더 나쁘다. 배추가 한창 크는 10월에 지난해보다 4배 넘는 비가 내렸다. 땅이 질어지자 뿌리가 흔들리고 뿌리혹병 등 병해가 생겼다. 남부 지방을 강타한 태풍 ‘차바’가 피해를 가중시켰다. 올해 해남 지역 가을배추 면적 1800㏊ 중 15%(280㏊)가 습해(땅에 습기가 많아 생기는 여러 피해)를 입었다. 올해 전체 가을배추 생산량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피해 규모다.
해남 지역에서 배추를 키우는 ㄱ씨는 “해남 지역은 전체적으로 습해를 입었다. 9월 초에 배추를 밭에 심었는데 한창 클 때 비가 많이 와 성장이 제대로 안 됐다. 지대가 낮은 밭은 배추 농사를 다 망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가을배추는 보통 김장용 절임배추로 판매되는데 해남 배추의 경우 20㎏ 기준 지난해와 비교해 5000원∼1만원 정도 가격이 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호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엽근채소관측팀장은 “해남 지역은 습해를 입어 올해 가을배추 작황이 부진하다. 그에 비해 다른 지역의 작황은 평년 대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11월 상·중순에 나오는 배추 작황은 괜찮지만 11월 중순부터 출하되는 배추는 작황이 안 좋은 셈이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역의 부진한 가을배추 작황은 전체 김장배추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세진 농림축산식품부 원예산업과 사무관은 “해안 지역의 습해로 올해 가을배추 전체 공급도 2∼3%가량 줄 것으로 보인다. 배추 가격이 다소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을배추는 전국에서 고루 재배되는 점을 생각하면 평년 수준에서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아산/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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