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압수된 도난 문화재인 동의보감 초간본. 책을 누구에게 하사했는지 알 수 없도록 오른쪽 둘째줄 ‘내사기’ 부분이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경찰이 국보급 문화재인 동의보감 초간본과 보물 ‘대명률’ 등 도난 문화재 3800여점을 압수하고, 문화재 도난에 연루된 도굴꾼과 절도범, 불법 매매업자 등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99년께 부터 전국의 사적지나 사찰, 고택 등에서 문화재를 훔친 도굴꾼 설아무개(59)씨와 문화재 절도범 김아무개(57)씨, 훔친 문화재를 사들인 사립박물관장 김아무개(67)씨, 매매업자 이아무개(60)씨 등 18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스님 출신인 문화재 매매업자 이씨는 1999년 절도범 김씨에게 사들인 동의보감을 경북에 있는 한 사찰에 2천만원을 받고 판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유명 사찰에 장물로 의심되는 동의보감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이씨가 장물을 매입해 되판 사실을 밝혀냈다. 회수된 동의보감은 25권 한 세트로, 국보 319호와 같은 판본이며 수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선 시대 명의 허준이 광해군 2년(1610년)에 편찬한 의서인 동의보감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여러차례 출판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에 보관돼 있으며 2015년 6월 국보로 지정됐다.
장물 문화재를 사들여 보물로 지정받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한 사립 박물관장도 붙잡혔다. 경북지역의 사립 박물관장인 김씨는 2012년 장물을 취급하는 이아무개(69)씨에게 중국 명나라때 법률 서적인 대명률을 산 뒤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이라며 속여 올해 7월 보물 1906호로 지정받았다. 이번에 발견된 것은 1389년 명나라에서 편찬된 책을 판각해 인쇄한 것으로,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1397년 최종본 보다 앞서는 희귀본인 것으로 조사됐다.
산성과 사찰 등에서 문화재 수백점을 훔쳐 집에 보관하던 도굴꾼들도 붙잡혔다. 도굴꾼 설씨는 2001년 충북 보은의 한 산성에서 도자기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설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삼국시대 도기, 고려시대 청자 등 문화재 562점을 회수했다. 이밖에 독립운동가 이상화 시인 일가의 국채보상운동 관련 서류 등 도난된 유물을 사들여 집에 몰래 보관하던 매입자도 적발됐다.
이번에 검거된 문화재 절도범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훔친 문화재를 자기 주거지에 수년~수십년간 보관하다 장물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장물을 거래할 때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동의보감의 경우 ‘내사기(궁에서 책을 누구에게 하사한다는 기록)’를 오려내고, 대명률은 앞·뒤 표지를 일부러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 절도범 등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문화재를 몰래 국외에 내다파는 업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문화재청과 공항 등과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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