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북원여고 학생들 “말(馬)은 없지만 말할 권리 있다”
교사 “여러분의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화답
9일 오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원주 중고생들 거리 집회
원주 북원여고 교내에 나란히 붙은 학생과 교사의 대자보. 독자 제공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강원 원주의 중·고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원주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선 교내에 최순실 국정농단을 꼬집는 대자보가 걸리는 등 비판 여론이 학생층까지 퍼지고 있다.
원주의 한 고등학교 2학년인 이채린양은 최근 원주경찰서에 오는 9일 오후 7시30분부터 원주 단계동 장미공원에서 ‘원주 중고생들의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를 열겠다는 내용의 집회 신고를 했다고 8일 밝혔다. 학생들은 이날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와 최순실 게이트 철저 수사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자유발언, 촛불시위 등을 벌일 참이다. 이양은 “대통령이 ‘무당’의 말에 정치를 했다고 하는 등 민간인에 불과한 최순실 등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했다. 특히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등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우리 학생들이 배워온 민주주의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양은 또 “그동안 집회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원주에 살다 보니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다.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학생들이 나서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원주에서도 집회를 열자고 몇몇 친구들과 뜻을 모으게 됐다”고 말했다. 이양은 9일 집회를 홍보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원주학생집회’라는 공유 페이지도 만들었다.
원주 중·고생들의 집회에 앞서 원주의 북원여고 출입문에는 지난 3일부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북원여고 3학년’이라고 밝힌 학생은 대자보에서 “뉴스에서 보이는 국정농단, 특례입학, 검찰의 늑장대응에 저희는 지금이 또 다른 권력의 강점기처럼 느껴집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배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인가요? 저희는 ‘말(馬)’은 없지만 ‘말’할 권리는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기득권층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앞으로 물려받을 민주주의를 더럽히지 말아 주세요”라고 국정농단 사태를 꼬집었다.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한 장면. 원주학생집회 공유페이지 갈무리
이 같은 대자보가 걸리자 한 교사는 학생 대자보 옆에 “입시교육에 눌려 시들어 있는 모습에 가슴 아팠는데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며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여러분의 선생님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응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북원여고 관계자는 “지난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 행사 때 학생들이 대자보를 써 식당 가는 길목에 붙였다. 학생들의 대자보를 보고 기특하게 생각한 교사들이 학생 대자보 옆에 답문처럼 응원의 글을 붙였다”고 말했다.
원주/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