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법적으로 문제없는데도 펼침막 게시 불허
특정 개인이나 단체 비방 금지한 조례를 근거로 들어
하동참여자치연대가 8일 오후 경남 하동군 거리 곳곳에 내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펼침막. 하동군이 펼침막 게시를 허락하지 않음에 따라 하동참여자치연대는 무단게시했다. 하동참여자치연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펼침막이 거리 곳곳에 내걸리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펼침막 내거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니 법적 근거가 없고, 허락하자니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하동참여자치연대는 지난 7일 오후 ‘순실나라 식물대통령 필요 없다. 박근혜는 즉각 물러가라’고 적힌 펼침막 30개를 만들어 관내 지정게시대에 걸기 위해 경남 하동군에 신고하러 갔다. 하동군 농민회도 이날 ‘가짜 정권 박근혜 퇴진하라’고 적힌 펼침막 2개를 만들어 하동군에 신고하러 갔다.
하지만 하동군은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을 표시할 수 없다”고 정한 경남도 옥외광고물 관리조례를 이유로 들어 두 단체의 펼침막 게시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동군 자문변호사에게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법률해석을 받았지만, 하동군은 “경남도에 질의해서 결정하겠다”며 펼침막 게시를 보류시켰다. 경남도 담당부서는 “하동군이 문건으로 공식질의하면, 행정자치부에 문의해 결정하겠다. 도 자체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하동군 담당자는 “인근 진주시와 남해군 등에도 문의했는데, 지금까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펼침막 가운데 지자체에 신고하고 내건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처리기한인 9일까지 두 단체에 결정내용을 알려줘야 하지만, 우리 군 스스로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경남도 담당자 역시 “길거리에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펼침막이 많이 걸려 있지만, 지자체에 신고하고 내건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석 하동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는 “법적으로 문제없음에도 펼침막 게시를 불허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막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하동군의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펼침막을 8일 오후 거리에 내걸었다. 모든 책임은 하동군에 있다. 앞으로 하동군의 조처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박상진 하동군 농민회 사무국장은 “하동군은 지난 2007년 김태호 경남도지사 퇴진을 요구하는 펼침막의 게시를 불허했다가 행정소송에서 진 경험이 있다. 대통령 퇴진 촉구 펼침막을 내거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또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