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특별기고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사진 허호준 기자
부정선거 이승만 정권 규탄하던
56년 전 중학생 시절이 떠올라 우린 민주공화국 체제를 갖췄으나
조선왕조 중앙집권체제마냥
정치문화는 크게 달라진게 없다 바람직한 정치철학은 뭘까?
성서에는 이미 사례가 적혀 있다
‘유능한 사람들과 짐을 나누라고…’ 56년이나 되는 긴 세월이 지났는데, 오늘 왜 또 같은 장소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너무 가슴이 아리고 부끄럽다. 그동안 4.19뿐 아니라, 5.18도 거치고 6월 민주항쟁도 거치며 수많은 민주투사들이 목숨을 바치고 고문과 투옥의 굴레를 쓰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여 그렇게도 희생하였건만, 어찌하여 반세기가 지난 오늘 또 이런 전근대적 정치파탄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 나는 얼마 전에 1920년 프레더릭 아서 매켄지 기자가 쓴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을 읽었다. 그는 영국 <데일리 메일> 기자로 1904년 러일 전쟁 시 일본에 와서 일본 군대에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극동 아시아를 접하였고, 친일적인 인사로 알려진 서방 세계 언론인이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차례 한반도를 방문하며 그는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들이 조선의 주권을 유린하며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만행임을 인지하고 서방 세계에 일본의 부당한 야욕을 폭로하고 있었다. 그는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평화적 시위와 저항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을 썼다. 내가 이 책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매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씨 왕조는 나라를 오백년이란 긴 세월 다스렸으나, 그 세월은 이 나라가 새롭게 발전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저지하는 요소였다. 이 나라에서는 왕이 모든 것이다. 국가는 오직 왕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였다. 나라 안의 어떤 사람도 너무 부유해져도 안 되고 너무 강해져도 안 되는 나라였다. …왕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일정한 규모 이상으로는 집을 크게 지을 수도 없다. 부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임금을 섬기는 자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왕의 신하들, 왕이 임명한 고을의 수령들은 백성을 멋대로 수탈할 수 있었다. 왕은 어디에서나 그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왕을 섬기는 일 말고는 어떠한 야심도 제거하는 李 왕가의 통치술은 산업도 죽이고, 발전도 죽였다.” 매켄지는 조선이 일찍이 일본에 문물을 전달할 만큼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러 일본의 먹이감이 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였다. 그가 보기에 원인은 외국 문물과의 모든 교류를 일체 차단하고 왕 혼자서 나라의 구석구석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폐쇄적인 중앙집권 체제였다. 그가 본 조선은 지방 구석구석까지 왕이 자기 사람을 임명하고, 왕조에 조금이라도 저항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체제 안에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진취적인 시도는 불가능한 사회였다. 이 나라는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민주공화국의 정치체제를 갖추긴 했으나,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의 정치문화는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체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고, 그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모든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어왔다. 지도자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되다보니, 대통령 최측근 인사들로 인해 역대 모든 정권이 예외 없이 충격적인 스캔들을 선보였다. 현 정권에 이르러서는 행정부와 무관한 한 개인이 대통령과의 사사로운 친분을 명분으로 국정 전반을 농단하는 전대미문의 부끄러운 실태까지 보이고 말았다. 이는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의 정치적 권위와 윤리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지지기반도 완전히 허물어진 치명적인 패착이었다. 성서는 이미 고대에 바람직한 정치 철학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 안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모세에게 재판해달라고 청하였다. 모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을 맞아도 끝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본 모세의 장인이 모세에게 충고하였다. “자네가 일하는 방식은 좋지 않네. 자네뿐만 아니라 자네가 거느린 백성도 아주 지쳐 버리고 말 걸세. 이 일은 자네에게 너무나 힘겨워 자네 혼자서는 할 수가 없네. 자네는 백성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진실하며 부정한 소득을 싫어하는 유능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백성 위에 세우게. … 그들과 짐을 나누어 자네 짐을 덜도록 하게”(탈출기 18:18-22) 세계는 수없이 반복된 독재와 전제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시도를 경험해 왔다. 미합중국이 여러 주의 독자성과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서로를 연방으로 묶어 하나의 국가 체제를 이루고 있고, 유럽연합이 가맹 각국의 독립과 권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동의 헌법과 통화를 만들며 경제적, 정치적 통합의 과정을 걸어가고 있다. 최근에 시도되는 이러한 연방제의 바탕에 깔린 국가철학의 이념은 ‘보조성의 원리’다. ‘보조성의 원리’란 한 사회에서 큰 집단의 권위자가 소집단 권위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일을 지칭한다. 또한 큰 집단의 권위자가 하위의 권위자가 갖는 고유의 권리와 자유와 능력을 최대한 존중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며, 소집단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한해서만 상위 권위가 도움을 주는 원리다. 이 보조성의 원리가 무시되면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이념이 횡행하여 개인과 소집단의 권리와 사회 전체의 공동선이 파괴된다.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이 “보조성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를 더욱 충실히 따르고 다양한 조직체간의 위계질서가 널리 받아들여질수록, 사회의 권위와 능률이 더욱 높아지고 국가의 상태는 더욱 행복하고 번영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교황 비오 11세, 회칙 ‘사십주년’ 35항) 이제는 우리 정치인들도 좀 더 성숙한 정치 철학을 배울 때가 오지 않았을까? 2016년11월8일 제주에서 강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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