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임하 한글교실’에서 70대, 80대 늦깍이 초등학생들이 한글수업에 열중하고 있다. 안동시 제공
‘간난한 산골아이는, 학교 문턱에도 못가밨다. 글자는 물론, 숫자도 몰아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의 한 경로당에 마련된 ‘임하 한글교실’에 다니는 이순자(80) 할머니가 쓴 <산골아이>란 시의 일부 내용이다. 이 할머니는 2년동안 1주일에 이틀씩 꼬박꼬박 한글교실에 나가 한글을 배웠다. 그는 “집안 어르신들이 여자 아이라고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글을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 이제 늦게 나마 한글을 배워 자신있고, 당당하게 살아간다.”고 기뻐했다. 이 할머니는 공책에 직접 시를 쓰고, 그 옆의 빈칸에 혼자서 은행과 병원을 찾아가는 그림을 그려넣어놨다.
임하 한글교실뿐만 아니라 녹전면, 도산면, 예안면 등 안동지역 4개마을 한글교실에 다니는 70∼80대 늦깎이 초등학생 68명이 10일 시집 <문해 인생의 글자꽃이 피어나다>를 펴냈다. 녹전면 한글교실에 다니는 이아무개(80) 할머니는 <즐거운 날>이라는 시에서 ‘내가 태어나서 두달되 엄마가 돌아 가셔, 엄마 얼굴도 모리고 조모가 나를 키우다 새엄마가 왔다. 학교도 안보내주고 원망이 만고,,,,,,,’ 라며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이 할머니는 “어린시절 못 배운게 한이 된다.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어 너무 좋다. 학교 가는날이 제일 즐거운 날이라서 시 제목을 즐거운 날로 정했다”고 말했다. 임하한글교실의 류아무개(80) 할머니는 “글을 익히면서 눈에 보이는 사물 이름을 써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밭에서 일을 하다가 시를 썼다”며 시의 제목을 <배추밭>으로 붙여 출품했다. 도산 한글교실에 다니고 있는 최아무개 할머니도 “늙은이의 하루일은 자신의 건강을 잘 돌보고, 자식들 행복하게 살도록 비는 일이요, 또 써 먹을 일이 없어도 한글을 한자한자 배우는 일이라”며 시 <늙은이의 하루>를 내놨다. 진재경(46) 안동시 평생교육새마을과 평생교육사는 “2∼3년 전부터 수자원공사의 협조를 얻어 농촌 마을 4곳에서 한글교실을 열어놨다. 80대 안팎의 할머니들 학구열이 대단하다. 결석이 거의 없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더라도 수업을 꼭 참석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수업은 안 빼먹을 정도다. 호응이 너무 좋아 내년에는 한글교실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동시는 12일 오후 2시 안동시 성곡동 안동댐 세계물포럼 기념센터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펴낸 시집 출판 기념회를 열기로 했다. 시를 출품한 늦깎이 초등학생 68명과 도외지에 나가 생활하는 자녀들도 참석한다. 시 전시회는 25일까지 세계물포럼 기념센터에서 열리고, 오는 28일부터 12월2일까지는 안동시청 로비로 옮겨 전시가 계속된다. (054)840-5561
구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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