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서구 비산동 주민들이 펴낸 책 <그래도 비산동은 내 동네다>의 표지
대구시 서구에서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한평생 겪어온 애환과 자취를 담은 책 <그래도 비산동은 내 동네다>를 11일 펴냈다. 또 <비산동으로 가는 길>이라는 마을노래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이 앞장서서 이런 책과 노래를 만든 것은 대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도 비산동은 내 동네다>는 1960∼70년대 인기를 끌던 ‘오스카 극장’과 미나리꽝에 깃든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30년 동안 비산동 섬유공장에 다니며 온갖 풍파를 겪어낸 김상태(78) 할머니의 인생역정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는 등 비산동에서 한평생을 보낸 지역주민 18명을 인터뷰했다. 7년동안 비산동에서 마을도서관 ‘햇빛따라’를 운영하며 책을 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김은자(48) 관장은 “비산동에 사는 사람들이 자꾸 다른 곳으로 떠난다. 또 이 마을에 산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유서깊은 이 마을을 자랑하고 싶고 기록에 남기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들기로 했다. 1년 동안 인터뷰를 맡은 자원봉사자 13명의 도움을 받아가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비산동 마을노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사를 짓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협동조합 ‘팩뮤직’이 곡을 다듬었다. 20여년 동안 비산동에서 공부방을 운영해온 이숙현 ‘희년 공부방’ 대표교사가 앞장서서 도움을 줬다.
지역주민들은 12일 오후 2시 비산 2·3동 주민센터에서 북 콘서트를 열고 새로 만든 책과 노래를 주변에 나눠주기로 했다. 대구시 서구 비산동은 유서깊은 곳이다. 400여년 전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커다란 산이 구름처럼 둥둥 떠서 날아왔다고 해서 ‘비산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져온다. 이 마을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유적에서 발견된 동검, 꺽창, 소뿔모양동기 등은 국보로 지정돼 있다. 백성들이 원님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북을 울리며 춤을 추었다는 ‘날뫼 북춤’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이곳 전승 문화유산이다.
장태수 서구의원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들까지 나서서 책과 노래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 기존의 마을공동체 활동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한평생 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고 책으로 펴내는 사업이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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